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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2008년 10월 26일자] 영혼의 리더④ 길상사 법정 스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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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어른 스님인 법정이 19일 법어를 통해 자살은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무소유’ 사상으로 유명한 법정(法頂·76) 스님이 19일 법문을 발표했다. 서울 성북2동 길상사에서 열린 가을철 정기법회에서다. 법정 스님은 강원도 산중에 있는 움막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스님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는 포용력이다. 법정이 어른 스님으로 있는 길상사의 유래에서도 스님의 포용력을 알 수 있다. 1997년 개원한 길상사는 60년에서 80년대 말까지 삼청각·청운각과 함께 최고급 요정이었던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이다. 환락의 공간이 영원한 낙을 추구하는 도량이 된 것이다. 길상사는 “불자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아름다운 도량” “승속이 함께하는 맑고 투명한 운영 체제”를 지향한다.

길상사 입구에 세워진 관세음보살석상도 타 종교에 대한 스님의 넉넉함이 드러난다. 이 보살석상은 마리아상을 닮았다. 가톨릭 신자인 최종태 전 서울대 미대 교수가 법정 스님의 부탁으로 성모상을 닮은 관세음보살상을 제작한 것이다. 극락전 바로 왼쪽에 있는 ‘침묵의 집’은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선 수행을 하는 공간이다.

법정 스님은 평소 이렇게 말한다. “종교라는 것이 내 종교, 네 종교만 옳다고 할 것이 아니다. 히말라야에 가려면 동으로도 가고 서로도 가고 헬리콥터를 타고도 간다. 여러 루트가 있다.”

자살에 대한 강경한 반대를 설파한 이날 법어에서도 법정 스님은 고민 있는 사람에게 “절이나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다”며 절만을 유일한 대안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스님이 법어에서 인용한 장혼(張混)의 ‘8가지 맑은 복’은 기독교의 진복팔단(眞福八端·여덟 가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참된 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일상 속의 사소한 일에도 감사한다는 스님의 말씀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구절이 연상되기도 했다.

32년 전남 해남에서 출생한 법정 스님은 55년 통영 미래사에서 출가했다. 불교신문(대한불교 조계종 기관지)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94년에는 순수 시민모임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의했다. 저서로는 『무소유』 『영혼의 모음』 『서 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등이 있다.

법정 스님의 정기 대중법회는 짝수 달 셋째 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극락전에서 열린다. 다음은 법문의 요지.

그동안 잘들 지내셨습니까.
요즘 같은 청명한 가을 날씨에는 사는 일이 새삼스럽게 고맙고 풋풋해집니다. 산에서 사는 저도 날씨가 나쁘면 괜히 짜증 나고, 오늘처럼 화창한 날씨에는 마음이 활짝 열리고 아주 즐거워집니다. 빨래를 널면서 서정주의 ‘푸르른 날’을 외우기도 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이렇게 두런두런 시를 외다 보면 사는 일이 새삼 고마워집니다. 지난날 우리가 소년·소녀 시절, 중·고등학교 시절 시를 외지 않았습니까. 시를 읽으면 피가 맑아집니다. 험한 세상 사느라고 무뎌진 감성의 녹이 벗겨집니다.

요즘 들리는 소식마다 우울합니다. 금융위기가 어떻고, 외환 사정이 어떻고…. 농사를 짓지도 않는 사람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한 쌀 직불금을 받아 갔습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널뛰고 있는 경제에 갈팡질팡 쫓기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경제가 삶의 전부가 아닙니다. 외부 여건이 행불행을 좌우하지 않습니다. 많이 가졌으면서도 살 줄 모르면 불행하고, 적게 가졌어도 살 줄 알면 얼마든지 행복합니다.

‘맑은 복’이 곧 행복
살 줄 아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행복은 어떤 것일까요. 250여 년 전 장혼이라는 선비는 ‘평생의 소망’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가진 ‘맑은 복’ 여덟 가지를 말했습니다. ‘태평시대에 태어난 것, 서울에 사는 것, 자신이 선비 축에 끼는 것, 문자를 대충 이해하는 것,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차지한 것, 꽃과 나무 1000그루를 가진 것, 마음에 맞는 벗을 얻은 것, 좋은 책을 소장한 것’이 여덟 가지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제 삶의 처지를 새삼 생각해 보니 제게도 맑은 복 네 가지가 있습니다. 책이 있고 차(茶)가 있고 음악이 있고 채소밭이 있습니다. 고맙게 여겨졌습니다.

송나라 때 시인이자 관리였던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저 강물의 맑은 바람과 산중의 밝은 달이여
귀로 들으니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니 빛이 되는구나
가지고자 해도 말릴 사람 없고, 쓰고자 해도 다할 날 없으니
이것은 천지자연의 무진장이구나.

경제에는 주인이 있을지 모르지만 강산은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강산을 즐기는 사람이 바로 강산의 주인입니다. 관심을 안으로 기울이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무진장합니다. 눈이 밖으로 쏠려 그것을 찾아내지 못합니다.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이 무수히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만을 위해 살거나 죽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가족과 친지와 수많은 이웃과 함께 삶의 흐름을 이루고 있습니다.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죽으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입니다. 이는 동서고금의 선각자들이 체험을 통해 말씀하신 바입니다. 우리가 평소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업(業)이 됩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살은 스스로를 해치는 자해 행위로 업이 되며, 이 업은 나중에 윤회의 사슬이 되고 고통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자살로 자해(自害)의 업만 추가할 뿐입니다.

절과 교회는 열려 있다
누구든지 제 명(命)이 있습니다. 몸을 바꾸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명의 현상으로 헌 차에서 새 차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자살하면 새로 타게 되는 새 차는 헌 차만 못합니다. 업의 파장 때문입니다. 업의 찌꺼기는 다음 생에까지 따라옵니다.

우리가 겪는 망막한 고통은 늘 지속되는 게 아닙니다. 흐린 날이 있으면 반드시 맑은 날이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인간사를 널리 살핀다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에 닥칩니다. 그럴 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고정관념 속에서 생각이 맴돌기 때문에 혼자서는 헤어 나오기 힘듭니다. 가까운 친구를 만나 짐을 나눠야 합니다. 친구가 없다면 절이나 교회는 항상 문이 열려 있습니다. 종교는 그런 자문에 응하라고 있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좋은 가을을 맞이하십시오.

김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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