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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의료정책] 2. 의료 실정 누구 책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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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의약분업이나 의료보험 통합은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20~30년간 지루한 논쟁 끝에 사회적 합의를 한 사안이다. 국민회의(현 민주당)는 1997년 대선 당시 이 두 과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정 1백대 과제로 삼았다.

이 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다기보다 갖가지 정책실수가 재정을 망가뜨렸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공약에 매달리고 개혁이라는 대의명분에 집착하다 보니 실패한 정책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의약분업안(案) 오락가락〓제도의 틀이 윤곽을 드러낸 것은 98년 8월 최선정 보건복지부차관이 주도해 만든 의약분업추진협의회 안(案)에서다.

의사협회와 약사회가 불만을 표하며 시행시기 연기를 요청하자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당사자 합의를 조건으로 수락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시 김찬우(한나라당)상임위원장과 박시균.정의화.황규선(이상 한나라당.의사 출신)의원, 오양순(한나라당).김명섭(국민회의.이상 약사 출신)의원이 주도했다" 고 말했다.

현 제도의 틀이 된 시안은 99년 5월 10일 시민단체 중재로 의료계와 약계가 합의(5.10안)한 것이다. 복지부는 "5.10안은 당시 국민회의 정책기획단 부위원장이던 김용익 서울대 교수, 국민회의 이성재 의원과 이상이 전문위원이 깊숙이 관여했다" 고 회고한다.

분업을 시행한 후인 지난해 7월 또 한차례 분업의 틀(약사법)을 바꿨고 주사제 문제로 올해 다시 바꿨다.

◇ 개혁 명분에 집착〓지난해 9월 민주당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정대철.박상천 최고위원이 분업의 한시적 유보론을 주장하자 이해찬 당시 정책위의장은 "시행도 제대로 안 된 법을 개정한다면 누가 법을 지키겠느냐. 여기서 물러서면 각종 개혁이 불가능하다" 고 말했다.

◇ 잇따른 의보 수가(酬價)인상〓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지난해 7월, 9월, 올해 1월 등 세차례의 수가 인상에 대해 복지부에 화살을 돌린다.

하지만 7월 수가 인상은 복지부.재경부.기획예산처 국장이 모인 태스크포스에서 결정했다.

지난해 9월과 올1월 수가 인상은 이한동 총리가 주재한 관계장관 대책회의에서 의료계 파업을 막기 위해 "의료원가를 현실화한다" 고 결정한 데 따라 이뤄진 것이다.

이 회의에는 복지.재경.행자.교육.기획예산처 장관, 복지노동수석, 국정홍보처장 등 9명이 참석했다. 특히 9월 수가 인상은 헌법재판소가 6대5로 간신히 합헌 결정을 할 정도로 문제의 소지가 많은 인상이었다. 복지부는 수가 인상 전에 절차상의 문제점을 민주당에 보고했었다.

◇ '의약분업 돈 안든다' 〓분업 시행 직전 복지부 내 의료보험을 담당하던 관료들은 돈이 더 든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차흥봉 장관은 이를 '묵살' 했다. 대신 약 사용 감소로 2~3년 후에는 매년 2조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6월 18일 1조5천억원이 더 든다고 시인했다.

◇ 분업 시범사업 '묵살' 〓병원협회는 99년 8월부터 시범사업을 하자고 복지부에 강력히 요청했다. 차흥봉 당시 장관은 그러나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재정 국민회의 전 정책위의장과 김유배 청와대 당시 복지노동수석도 "지금 시점에서는 불가능하다" 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시범사업 대신 지난해 4월 '엉터리 모의테스트' 를 했다. 국민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하면서도 시범사업을 안 했다. 의보재정 추계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 분업 효과 호도〓지난해 9월 민주당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최규학 청와대 복지노동수석은 "분업 후 약 소비와 과잉처방이 줄고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결과는 거꾸로 갔다.

복지부는 지난해 6월 말 보도자료를 통해 "의료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 본인부담금은 지금처럼 3천2백원을 동네의원에서 나눠 내면 된다" 고 했다. 하지만 주사제를 분업대상에서 빼는 쪽으로 바뀌었고 본인부담금은 30% 올랐다.

◇ 의료계 파업 엄정 대처 공수표 남발〓정부는 세차례의 사회장관회의(의장 최인기 행자부장관)와 수차례의 관계장관회의(의장은 대개 이한동 총리)를 열어 의료계 파업에 엄정 대처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행정처분 대상자 43명을 적발해놓고도 넉달째 처분하지 않고 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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