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따라 물따라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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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많은 시간, 비싼 장비가 필요 없다. 편한 옷과 신발, 하루 정도의 시간만 있다면 누구나 떠날 수 있다. 내 속도에 맞춰 걷다가 힘들면 잠시 쉬면 된다. ‘아름다운 도보여행(이하 아도행)’ 회원들이 말하는 도보여행의 매력이다. 아도행 성남·용인 지역 멤버들이 재발견한 우리 동네 도보여행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아도행은 걷기 모임이다. 제주 올레길과 같이 유명한 길은 물론 새로운 길도 만들어 가며 걷는다. 새롭다고 해서 없는 길을 닦고 아스팔트를 까는 것은 아니다. 좁고 바닥이 울퉁불퉁해도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면 된다. 아도행 회원들은 흙길을 선호한다.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길이라면 더욱 좋다. 이들은 길이 단순하게 관광지와 관광지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길 자체가 문화이고 관광지이기 때문”이라는 게 아도행 운영자 손성일(38)씨의 말이다.

손씨는 2006년에 도보여행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을 걸어 보겠다’며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 처음에는 ‘딱 1년 만’이라고 생각했다. 사각형으로 나눈 우리나라 2200km를 걷는 동안 그는 아름다운 곳을 수없이 발견했다. 더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2007년 가을,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로 떠났다. 75일간 1800km를 걸었다. 60%가 숲으로 이뤄진 산티아고는 길과 도보여행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만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해남에서 서울을 잇는 ‘삼남길 만들기’에 도전했다. 첫 도보여행 때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걸었지만 이번에는 마을과 마을을 잇는 흙길을 찾아 걸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곳은 오솔길을 새로 냈다. 새 길을 만드는 데 많은 돈과 대규모의 정비 작업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은 이정표 하나면 충분했다. 이렇게 3년 간 1만여 km를 걸었다. 2008년 4월에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아도행은 현재 95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1000원씩 모아 매월 공익재단에 기부도 한다. 

도심 안에서 찾는 옛 문화의 손길

도보여행 전문가인 손씨에게 분당은 또 다른 발견이었다. 중앙공원·율동공원·영장산·불곡산·탄천. 분당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고, 한 번쯤은 가봤을 만한 곳들이다. 딱히 특별한 건 없는 곳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니 새로운 여행길이 열렸다.

“흔히 분당에는 새로운 길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같은 중앙공원이라도 광장이 아닌 팔각정에 닿는 낮은 동산을 오르고, 공원 안의 전통 가옥을 둘러본다면 색다른 느낌이 들죠.” 그는 “오래된 나무나 비석, 지역 문화재 등 옛 것의 정취를 찾는 것도 하나의 재미”라고 귀띔한다.

올해로 19년 째 분당에 살고 있는 윤항중(47·수내동)씨에게 분당은 분당천·탄천을 중심으로 하나로 연결된 걷기 편한 길로 비친다. 대부분의 주민은 중앙공원·율동공원·분당천·불곡산은 알지만 이 곳을 연결해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잘 못한다. 윤씨는 차가 없는 안전한 길을 찾다가 하천을 따라 걷는 길을 발견했다. 그는 “오가는 길을 조금만 바꾸면 분당 내 명소들이 서로 맞물려 있음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남시 등산로로 알려진 성남시계 길도 걷기 좋은 길”이라고 조언했다. 산으로 연결돼 있지만 능선이 많아서 걷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 특히 새마을고개·태재고개 등을 이용하면 뒷동산을 오르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공원과 산을 따라 걷는 여행길

도보여행 초보자들에게 공원과 공원, 산과 산의 이음을 만들어 가며 걷는 길은 전혀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딸과 함께 도보여행에 나선 김선화(50·분당 정자동)씨는 “15년 간이 곳에 살았지만 공원과 공원이 분당천으로 연결된 것은 몰랐다”고 말했다. 내년 9월 해외 유학을 앞둔 딸 한승민(18)양의 체력을 키우기 위해 이들 모녀는 도보여행에 참가했다. 김씨는 “걷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데다 자기 속도에 맞출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산행은 오르막을 오르기가 어렵고 자칫 잘못하면 다칠 수도 있다. 걷기는 이러한 위험이 없다. 시간이 적게 드는 것도 매력이다. 좋은 곳을 찾아먼 곳까지 갈 필요도 없고, 몸에 무리가 오면 걷기를 멈춰도 된다.

이사온 지 한달 남짓됐다는 유림(닉네임·47·판교)씨는 “분당이라는 하나의 퍼즐을 맞춘 것 같다”고 전했다. 평소 지나다니던 곳도 두 발로 걸어보니 더 매력적이었다. 태재고개·불곡산으로 이어진 성남시계 길에 마음을 뺐겼다. 중앙공원 내 한산 이씨 옛집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도심 중앙에서 초가집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며 “어렸을 때 살던 옛 동네를 떠올렸다”고 미소지었다. “계절이 바뀌면 공원도 산도 색다른 느낌이 들겠죠. 또 다른 모습의 분당이 기대되요.”

[사진설명]아름다운 도보여행 성남·용인 지역 회원들이 분당공원을 걷고 있다. 이들은 “이번 도보여행으로 자연·역사가 녹아있는 분당의 매력을 새롭게 알았다”고 말했다.

< 신수연 기자 ssy@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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