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의 이유 ① Swiss made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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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은 오랜 전통과 장인의 혼이 담겼을 때 탄생한다.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흔히 그 가치를 잊고 명성만을 이야기 한다. ‘명품의 이유’는 명품이 명품다운 이유와 그 가치를 다시 짚어보는 시리즈다. <편집자 주>

쇼핑을 하면서 구매 여부를 원산지에 의해 결정하는 경우는 대부분 ‘명품’일 때다. 그중 원산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시계다.

스위스에서 만든 시계, 즉 손목시계를 비롯해 괘종 및 탁상시계에는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라는 표시(줄여서 ‘Swiss’라고도 표기)가 꼭 새겨 있다. ‘스위스 메이드’는 스위스 시계 제조업의 전통 및 기술을 상징한다. 이는 곧 세계적으로 높은 품질의 제품임을 증명하며 구매 고객에게 정확성과 신뢰도를 보증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브랜드의 독특한 기술과 뛰어난 명성을 상징하는 지표로 작용하기도 한다.

법적으로 스위스 메이드는 무브먼트(시계의 구동을 관장하는 부분)가 스위스제(무브먼트가 스위스에서 조립됐거나 검사받은 경우, 또 스위스제 부품이 무브먼트 가격의 51%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에 해당된다)이거나, 무브먼트가 스위스에서 장착된 경우와 제조업체의 최종검사가 스위스에서 행해진 것을 말한다.

무브먼트를 만드는 일은 사실 웬만한 기술력으로는 승부할 수 없다. 쿼치 무브먼트(배터리가 들어가는 전자식)를 사용하는 80% 이상의 시계가 스와치그룹의 에타(EAT) 무브먼트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에타는 무브먼트만을 만들어 명품시계회사에 납품하던 회사로, 스와치그룹이 1980년대에 인수했다. 1793년에 세워져 쿼치무브번트부터 태엽으로 돌아가는 기계식까지 모두 만들던 에타(인수 후엔 쿼치 무브번트 전략 생산으로 바뀌었다)의 기술은 웬만한 회사가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다. 지난 1월 초 스와치그룹 니콜라스 하이에크 회장이 무브먼트를 포함한 핵심 부품의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자 업계가 술렁인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시계회사가 스와치의 무브먼트를 받아 스위스 메이드의 조건을 갖추게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네바 홀마크’의 인증을 받는 것 역시 의미가 깊다. 제네바 홀마크는 스위스 메이드 중에서도 제네바를 근거로 하는 시계 제작회사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제네바 시계 검증국에서 제안하는 까다로운 기준(12가지의 제작과 시계 품질에 관한 기준)에 부합하는 시계들만이 획득할 수 있다. 현재 까르띠에와 바쉐론 콘스타틴·파텍 필립 등 7개의 브랜드가 이 인증을 받은 적 있다.

명품(시계 제조에 한해)이라 불리는 대부분은 스위스 메이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무브먼트만이 아닌 시계 전부가 스위스 메이드에 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시계는 공장에서 물품을 찍어내듯, ‘생산’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엔 적합하지 않다. 까르띠에의 경우 시계의 핸즈(시계 바늘), 크라운(용두)의 카보숑(각 없이 둥글게 깎아내는 커팅), 유연한 곡선을 가진 크리스털 글라스(시계 케이스의 유리)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시계전문학교를 졸업한 장인들의 손길을 거친다. 160년에 걸쳐 쌓인 시계 제조 노하우와 전통에 장인의 혼을 담았으니 이쯤 되면 작품에 더 가깝다.

명품 시계의 핵심은 기술력이다. 동시에 패션 아이템이면서 자신의 지위와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수단이다. 전통과 기술의 노하우, 그리고 세월 속에서 습득된 디자인이 ‘갖고 싶은 시계’를 만든다.

[사진설명]2시 방향에 제네바 홀마크가 새겨진 까르띠에의 9452M 칼리버 무브먼트.

< 이세라 기자 >
[사진제공=까르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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