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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유학생 또 피습 …‘스킨헤드 테러’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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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러시아에서 극우 인종주의자의 소행으로 보이는 한국인 대상 테러가 또다시 발생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체류 중이던 한국 유학생이 괴한이 휘두른 칼에 찔려 중태에 빠졌다가 상태가 호전됐다. 지난달 중순 러시아 중부 도시에서 연수 중이던 국내 대학생이 현지 청년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해 숨진 지 3주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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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르는 한국인 대상 테러=외교통상부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7일(현지시간) 오후 5시쯤 모스크바 남서부 유고자파드나야 역 인근 거리에서 모스크바국립영화대학교(VGIK) 3학년 심모(28)씨가 복면을 한 괴한 2명으로부터 목 부위를 칼에 찔려 중상을 입었다. 현지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미국 공포영화 ‘스크림(Scream)’에 나오는 해골 복면을 한 청년 2명이 다가와 그중 한 명이 심씨를 칼로 찌르고 도망갔다”고 전했다. 심씨는 곧바로 인근 시립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여에 걸친 응급수술을 받고 상태가 호전됐다.

6년 전 모스크바로 유학 온 심씨는 이날 현지 교포와 유학생 등 5명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오다 변을 당했다. 심씨가 사고를 당한 지역은 지난주에도 외국인 1명이 현지 청년들에게 피살되는 등 외국인 대상 범죄가 빈발하는 곳이다. 현지 경찰은 범행 수법 등으로 미루어 외국인 혐오증을 가진 극우 민족주의자(일명 스킨헤드)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용의자의 얼굴을 봤다는 목격자를 확보해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달 15일에는 러시아 중부 알타이주 바르나울시에서 연수 중이던 한국 대학생 강모(22)씨가 현지 청년 3명에게 칼에 찔리는 등의 폭행을 당해 숨졌다. 지난해 1월에도 모스크바에 유학 중이던 한국 여대생이 인화성 물질로 공격당하는 등 한국인 대상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러시아 일부 지역에 4단계 중 1단계(여행 유의) 또는 2단계(여행 자제)의 여행 경보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스킨헤드 가능성 높아=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대상 테러는 주로 러시아내 극우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머리를 짧게 깎고 다녀 스킨헤드(Skin Head)로 불리는 이들은 ‘러시아인만을 위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우는 인종주의자들이다. 히틀러의 백인 우월주의에 근거해 백인에 속하는 러시아인이 유색인에 비해 인종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다. 각종 범죄와 마약·매춘 등 사회적 문제들이 개방 이후 쏟아져 들어온 외국인들로부터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또 외국인들이 러시아의 자원과 부를 강탈해 가는 것은 물론 일자리까지 빼앗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외국인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10~20대 중반의 청년층이 주를 이루는 스킨헤드 단체는 모스크바에만 2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지 사법기관은 현재 러시아 전역에서 약 7만 명의 스킨헤드들이 활동 중인 것으로 추산한다. 이들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동양인과 흑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 손발로 때리는 것은 물론 체인이나 칼 등 흉기를 휘두르거나 총기로 치명상을 입히는 경우도 많다. ‘모스크바 인권사무소’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한 해 스킨헤드들이 주도한 테러가 215건이나 발생해 74명이 사망하고, 280명 이상이 다쳤다.

글=유철종 기자
인포그래픽=박춘환·김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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