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시평] 탈레반 증후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나라의 95%를 장악해 지배하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 탈레반 군이 불상(佛像)파괴를 자행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외부 기자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놓고 바미안에 있는 세계 최대의 돌부처를 깨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슬람 원리주의의 狂氣

1천5백년 전에 만든 두 부처를 비롯해 카브르의 국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6천이 넘는 부처님도 박살내라는 명령을 탈레반의 지도자 모하메드 오마르가 이미 내린 바 있다. 명분은 이슬람의 성전 코란경의 가르침대로 우상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전통과 정신에 비춰 볼 때 이것은 어처구니 없는 광기(狂氣)와 실성(失性)의 작태가 아닐 수 없다.

632년 예언자 모하메드가 죽고나서 영명한 후계자 아부 바크르.오마르, 그리고 오트만이 차례로 아랍의 전사를 이끌어 중동을 석권했다. 이들의 눈부신 성공 비밀은 정의와 관용이었다.

이 전통은 계승돼 정복자 모하메드 2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 오토만제국을 세웠을 때 이 도시에 학문과 예술의 꽃이 찬란하게 피었다. 그의 손자 슐레이만 대제는 유럽 깊숙이 그 판도를 넓혔다. 동방교회와 그 성상(聖像)을 보호하는 정책이 오스만터키의 성공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위대한 이슬람의 정신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문명파괴자의 손에 죽는 것이 슬프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뿐 아니라 모든 원리주의.교조주의,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절대가치를 내세우는 이데올로기가 빠지는 함정이다.

종교전쟁이 주로 신구 기독교 종파간의 싸움이었고 기독교와 이슬람의 투쟁도 일신교의 태생적 살기(殺氣)를 증거한다. 유대인을 비교적 관대하게 다루면서 이용했던 모슬렘보다 이들을 철저히 미워해 박해한 기독교의 반유대주의는 변태적 집단 가학성 증후군이라 할 만하다. 탈레반의 폭거를 규탄하는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가재와 게처럼 이들과 한통속인 것을 알기가 어렵지 않다.

일신교도들은 다신교를 믿는 사람, 혼합신앙주의자(Syncretist)를 경멸한다. 이들은 신앙문제로 사생결단의 싸움을 한 일이 없는 사람은 철학도, 사상도 논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신앙 때문에 누구를 죽일 마음이 추호도 없는 필자는 일신교도의 살기를 싫어한다. 기독교도 가운데서도 배타적인 프로테스탄트가 19세기 독일의 이념주의 철학을 만들어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피히테.헤겔.셸림.슐라이어마허 등 거목들을 배출한 이 나라에 히틀러와 그의 광신적 추종자들도 있었다.

독일 이념주의 철학이 나치즘과 관련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철학적 이성은 이것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나치의 반유대주의는 기독교의 반유대주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종교가 힘을 잃어가고 기독교가 세속화하면서 인간해방의 믿음과 끝없는 발전의 신화가 새로운 종교가 됐다. 이것은 정치운동의 핵폭탄이 돼 20세기에 수천만명의 무고한 인민을 죽이는 데 동원되었다. 이 유사종교의 파괴력에 비하면 아프간 탈레반의 소아퇴행(小兒退行)은 토악질나는 장난 같이 보인다.

동아시아의 세나라 가운데 기독교 국가라 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25%에서 40%에 이르는 동포가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이 가운데 몇사람이 실성해 산에 있는 돌부처에 오물을 발랐는지 모르겠으나 탈레반이 우리 가운데 나타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사상적 경직 반성 했으면

우리의 탈레반 증후군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조선조 성리학에 비판적이거나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가차없이 박해했던 일에 탈레반의 씨가 있지 않았을까, 조선 성리학의 사상적 독선과 아집, 배타성과 협량이 기독교와 접목돼 우리의 사상적 경직성으로 나타나지 않는지, 치열하게 반성하는 것이 절실한 이 시대의 요청이다.

유일사상 주체주의 신앙생활을 반세기나 해온 북녘의 탈레반 형제들을 맞이하려면 우리 자신의 탈레반과 정면으로 대좌해 뜻을 달리하는 사람에 대한 관용을 회복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흉노와 그 후에 탈레반 같은 회교도가 북부인도에 쳐들어와 사찰을 파괴하고 승려를 죽이고 도서관을 불지르고 불상을 부술 때 중들은 저항하지 않았다. 불교가 인도에서 죽은 이유다. 우리의 관용이 이 지경에 이르게 하는 일은 물론 있을 수 없다.

김상기 <재미 정치평론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