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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손재주와 프리마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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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국의 국보'이자 생명공학(BT) 산업을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게 할 주역으로 꼽히는 서울대 수의대 황우석 교수. 그가 "난치병 환자 치료를 미룰 수 없다"며 인간 배아(胚芽) 복제 연구 재개를 선언했다.

180여명으로 구성된 황 교수 팀은 배아 복제를 통한 불치병 치료용 줄기세포 만들기와, 인간 면역 유전자를 삽입한 무균 돼지를 활용한 인체 장기(간.심장 등) 교체 치료에서 세계 정상에 서있다. 연구팀의 무균 돼지들은 체격을 작게 해 장기 크기가 사람과 같은 보물들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10년 뒤쯤부터는 세계의 난치병 환자들이 "돈은 얼마든지 내겠다"며 황 교수의 바이오 치료단지에 줄을 설 것이라는 '아름다운'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당뇨.암.뇌졸중.심근경색증.척추신경마비 등이 치료 대상이다. 척추 장애인이 된 댄스 가수 강원래가 다시 무대에서 훨훨 나는 모습을 볼지도 모른다. 인류에겐 복음이고 한국엔 '대박'일 것이다.

얼마 전 황 교수의 연구시설을 둘러본 한 세계적 생명공학자는 "한국은 세계의 프리마돈나(주역 배우)가 됐다. 인류가 한국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그 원동력은 1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쓴다는 연구팀의 365일 투혼, 창의성, 전문가들의 성공적 협업 등이다. 이와 함께 황 교수가 1등 공신으로 꼽는 것은 한국인의 손재주다. 생명공학엔 기계로는 안 되고 손 기술로만 해결가능한 핵심 과정들이 있는데 여기서 한국인의 1등 손감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황 교수 팀이 광학 현미경을 보며 미세한 관으로 난자(10분의 1 mm 크기)에서 핵을 떼어내는 솜씨를 본 외국 학자들은 "마술이다"를 연발한다. 인간의 난자는 끈끈한 데다 터지기 쉬우니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복제 수정란을 만들고 돼지 몸 안에 착상시키는 일 등을 번개같이, 또 정확하게 해내니 외국과 격차가 벌어진다.

한국은 식물 형질 전환 생명공학에서도 세계적 수준이다. 가뭄과 냉해를 견뎌내는 고구마와 감자를 최근 개발해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곽상수 박사도 특수 유전자를 엽록체에 끼워넣는 작업에서 우리의 손재주가 큰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그 덕에 한국 과학자들이 생명공학에서 개가를 올렸다는 뉴스가 거의 매달 나오는 것이다.

한국이 한몫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손재주가 효자 노릇을 한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사용에 능숙한 것, 잽싼 손놀림이 필수인 온라인 게임에서 강국이 된 것도 그 영향이다.

반도체 강국이 되는데도 손재주가 기여를 했다. 삼성전자 고영범 전무의 얘기다. 선진국 기술을 따라잡을 때 개발과 생산에 미세한 수작업이 많았는데 여직원들의 섬세한 감각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공정이 완전 자동화됐지만 그래도 기계가 못하는 부분을 채우는 데는 서양인보다 우리가 우수하다.

손재주가 필수인 애니메이션도 우리의 뛰어난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면서 한국이 강국의 반열로 도약하고 있다.

미끄러운 쇠젓가락을 능수능란하게 쓰는 민족적 전통(중국.일본은 나무 젓가락)과 양념이 많아 유별나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문화, 바느질을 중시했던 전통, 시서화(詩書畵)를 함께 하도록 권장했던 문화, 활쏘기에 강했던 전통이 공로자다. 손을 많이 쓰면 머리도 좋아진다. 연간 수출 2000억달러 시대에 힘찬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초.중.고교에서 젓가락질.바느질.음식조리 등을 남녀불문 가르칠 일이다. 생명공학, IT, 극미세의 나노산업에서 세계적 프리마돈나가 될지니.

김 일 디지털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