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보다 중요한 건 국민고통 어떻게 푸느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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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10면

이태복 전 장관은 “선진당이 충남 지역에 정치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안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고 정서적으로도 대체로 같다”고 말했다. 신동연 기자

“평생 노동자의 삶을 살아왔다. 그를 노동자의 벗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한편에서는 급진적 인사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그는 좌경이란 굴레를 쓰기도 한 노동운동을 하다가 8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돼 1981년 사형을 구형받기도 했다. 그때 고문경관 이근안으로부터 두 달여간 고문을 받았다고 한다. 86년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이 그를 ‘세계의 양심수’로 선정해 국제적인 석방운동을 벌였다.”

자유선진당 간판 달고 충남지사 출마 선언한 이태복 전 장관

이태복(60)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이력이다. 그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진보와 노동운동이다. 2001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재야에 머물던 그를 청와대 복지노동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 제도권으로 끌어올렸다. 2002년 장관에서 물러난 뒤엔 복지 관련 사회운동에 매달려 왔다. 그런 그가 6·2 지방선거 때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했다. 진보 진영이 아니라 보수당의 간판을 달고서다. 보령 출신인 그는 이회창 총재의 지역구인 홍성·예산의 예산중학교를 나왔다. 성동고등학교를 거쳐 국민대 법대를 졸업했다.

4일 서울 여의도 자유선진당사에서 만난 이 전 장관은 양복 옷깃에 파란 자유선진당 배지를 달고 있었다. 진보라는 뚜렷한 색깔을 가진 그가 보수 정당을 표방하는 선진당의 충남도지사 예비후보가 된 것이다. 그가 왜 제도권 정치로 돌아왔는지, 왜 선진당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왜 충남도지사 출마를 결심했나.
“1월 말 류근찬 원내대표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도정(道政)과 정치는 다르지 않느냐고 하더라. 청와대 생활을 하고 장관을 해 봤지만 현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국은 쫓아오고 경제는 어려운데 여러 정책이 계속 실패하고 있다. 도정을 맡아 충남이 신성장동력 산업의 메카가 되게 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고향을 발전시키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냈다. 박원순 변호사 같은 분도 잘 선택했다고, 좋은 도정을 하라고 했다.”

-선진당과는 이념이 다르지 않나.
“우리 사회는 진보·보수, 성장·분배 논란이 요란한 사회다. 이런 이분법적 생각이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본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도산 안창호 선생인데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무실역행(務實力行)’을 말씀하셨다. 현실에 근거해 어느 정책이 현실적이냐는 걸 따지는 사람이 이태복이다. 도그마에 근거해 현실을 보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공리공론(空理空論)’을 정말 싫어한다. 노동운동을 할 때도 관념적으로 과격한 사람들은 엄청난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나는 8시간 노동제, 최저임금제, 노동 3권 보장을 이야기했다. 또 광주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태(80년 광주민주항쟁을 지칭)를 국민에게 얘기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했다. 이념을 자꾸 얘기하는데 그건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현실이다.”

-국민의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 이회창 총재는 DJ와 대선에서 맞붙었던 사람이다.
“2004년 잠시 당적(민주당)을 가진 것 말고는 나는 당적을 가진 적이 없다. 대선에 뛰어들어 적극적 역할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다. 내 전문 지식과 능력을 평가해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시킨 거다. 정치권에 있는 분들을 잘 안 만나는 것도 불필요한 패거리 정치에 끼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도정은 정치와는 다르다.”

-96년엔 신한국당 영입 제의를 받았고, 2004년엔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가 반납한 적이 있다. 이번엔 선진당인데 자리 따라 움직이는 걸로 보일 수도 있다.
“먼저 하겠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 96년에도 참신하고 개혁적인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다며 신한국당이 나한테 제안한 거였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 양쪽에서도 정치를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브로커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고 거절했다. 이번에도 제안이 와 고민했다. 장관 지낸 사람이 차관급인 도지사 자리에 욕심은 없다. 명예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고향 사람들에게 희망을 만들어 주고 대한민국에 길을 열어 주고 싶었다.”

-자신의 이념의 본류가 어디라고 생각하나.
“국민의 구체적 현실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노인 틀니 건강보험 적용을 위한 국민대책위원회’ 활동을 하는데 한나라당 안경률 의원이나 선진당 류근찬 원내대표, 민주당 양승조 의원과 공동 대표를 맡았다. 국민의 고통을 어떻게 푸느냐가 중요하지 여야를 구분할 생각은 없다.”

-이회창 총재와 면담에선 어떤 얘기를 했나.
“비공개 면담이어서 얘기할 수 없지만 선진당이 지향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와 내가 갖고 있는 복지에 대한 생각이 큰 차이가 없다는 건 확인했다. 이 총재는 고향 선배이기도 해서 야당 총재 하실 때도 예의 바르게 인사드렸다.”

-세종시는 곧 충남의 문제다. 지금 논란을 어떻게 보나.
“국가적 현안이 산적한데 왜 이 문제를 가지고 나라 전체가 시끄러운지 이해를 못 하겠다. 정부는 비효율과 낭비를 얘기하는데 내 경험으로 보면 맞지 않다. 장관 할 때 과천에서 국무회의 하러 중앙청사를 가는데 보통 한 시간 걸렸다. 대전에서 서울 올라오는 데도 한 시간이다. 또 전국에 있는 지자체 사람들이 과천까지 간다. 그런데 이걸 세종시로 옮기면 절반의 부담이 줄어드는 셈이다. 사회부처의 경우 세종시로 가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수년의 논란 끝에 안이 만들어졌고 이미 터 파고 기초공사 하고 있는데 중지할 게 아니다. 그대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우리 당론이 원안을 사수하자는 것이고, 나도 원안을 지지한다.”

-국민투표로 세종시 문제를 매듭짓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특정 지역의 이해를 다른 지역의, 수도권의 이해로 해결하려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국민투표 차원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게 될 거다. 다 불행해진다.”

-당내 경선을 거쳐야 하는데.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현역 의원이 배지를 떼고 의원직을 내놓는 것도 어려운 선택이지 않나. 그래도 용기 있게 나오는 분이 있으면 경선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걱정은 내가 현실정치판에서 활동을 안 해서 도민들이 이태복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나를 잘 알고 이제까지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다는 걸 알면 (지지율이) 바로 올라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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