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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 찬스! 일본 기업은 사냥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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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도요타자동차가 리콜 사태로 휘청거린다고 해서 일본 기업들이 모두 흔들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탄탄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외국 기업을 사냥하거나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에 나서는 기업이 속속 나오고 있다.

특히 도요타 계열의 무역회사인 도요타통상은 아프리카 수단의 주바에서 케냐 라무 섬에 이르는 1400㎞의 송유관 건설사업을 따내기 위해 현지 정부와 접촉하고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4일 보도했다. 이번 사업 규모는 15억 달러에 이르며 이를 따낼 경우 일본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최대 사업이 된다. 도요타통상의 하토리 다카시 이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공사를 따낸다면 하루에 45만 배럴의 석유를 보낼 수 있는 송유관을 설치하고, 석유 수출 터미널도 세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요타통상은 이 사업을 수주하면 20년간 시설 소유권을 보유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일본 내 2위의 제약사인 아스텔라스제약이 미국의 OSI 파머수티컬스를 인수할 계획이라고 3일 보도했다. 아스텔라스는 공개매입을 통해 OSI의 주식을 주당 52달러에 사들일 계획이다. 이는 지난주 말의 종가에 40% 프리미엄을 얹은 금액이다. 총 인수 금액은 3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아스텔라스가 인수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OSI가 판매 중인 ‘타세바’라는 폐암 치료제 때문이다. OSI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영업보고서에 따르면 OSI는 지난해 타세바로 3억5800여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아스텔라스는 이와 관련한 성명을 내고 “인수가 성사되면 우리는 미국 내에서 최고의 암 치료제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엔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엔화 가치가 배경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해 엔화 가치는 달러당 84.82엔으로 14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조사회사 딜로직에 따르면 일본 기업들은 엔고 덕분에 지난해 58억9000만 달러를 들여 82개에 이르는 외국 회사를 인수했다. 다이와증권그룹의 총괄 국장보 니시무라 유미는 WSJ와의 인터뷰에서 “엔화 강세가 일본 기업에 외국 기업 인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엔고에 힘입은 일본 제약사들의 외국 기업 사냥은 2008년 이래로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2008년 5월 일본 기업 다케다제약은 미국의 밀레니엄 파머수티컬스를 89억 달러에 인수했다. 또 같은 해 1월 일본의 에이사이는 미국 MGI 제약을 39억 달러에 인수했다. 미국 이외에선 다이이치산교가 같은 해 가을 4880억 엔을 들여 인도 기업 랜박시 제약의 지분 64%를 사들였다. 

권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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