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겉만 맴돈 '국민과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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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는 국정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현안이 다뤄졌음에도 핵심엔 접근하지 못한 채 겉만 맴돌아 실망스러웠다.

물론 전체 국민을 상대로 국민의 소리를 들어보고 국정에 반영할 기회를 갖는다는 점에서 일반적 기자회견과 성격을 달리할 수 있다. 또 대통령과 국민의 대화가 꼭 깜짝쇼처럼 중대 사안을 발표하는 자리여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대통령의 진솔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정치 9단' 다운 경륜의 정국해법이 두시간 내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TV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대화' 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을 읽을 수 있다.

金대통령은 대화의 상당부분을 경제 살리기와 실업대책에 할애했다. '하면 된다' 는 각오로 국민적 단결을 호소한 부분이 공감을 주기는 했지만 구체적 대안이 미흡했다. 지난해 10월 金대통령은 경제 어려움에 대한 정부 책임론을 개진했고 국정 쇄신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6개월이 넘도록 국정 쇄신책은 보이지 않은 채 '강한 정부' '강한 여당' 을 앞세운 강성정치가 등장했다. 국민과의 대화라면 최소한 국민에게 약속했던 국정 쇄신책에 대한 해명과 강성정치에 대한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현 정부 출범 때 약속한 정치개혁이 2년 임기를 남기고도 실적이 전무한 데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었음은 유감이다. 방송사가 사전에 편집한 내용 중엔 정치불신 내용이 많았음에도 상생정치와 정치개혁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어 공허했다.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 金대통령은 자신의 민주화투쟁 경력을 내세우며 "결코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정당한 세무조사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조사엔 여권의 강성정치와 맞물린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의혹 또한 떨치지 못하고 있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언론의 기능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는 지적에 대통령은 "그런 걱정이 없도록 관계당국에 철저히 전하겠다" 고 다짐했다.

대통령의 이 답변이 허언(虛言)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는 사태 추이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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