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문화예술 매력 파헤친 '… 샤넬 No.5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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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답답했던 1970년대 서울 사간동 프랑스 문화원의 강당 접의자에 앉아 16mm영화를 즐겨보던 이들에게 프랑스는 자유와 낭만으로 가득찬 동경의 세계 그 자체였다.

80년대,90년대를 거쳐 해외여행이 보편화면서 젊은이들은 영화로 유명해진 ‘퐁네프’의 연인들을 보러,또는 샹송이 흐르는 뒷골목 카페에서 붉은 와인 한잔을 맛보기 위해 배낭을 메고 파리를 향했다.

지난해 프랑스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 7천5백만명에서 보듯 파리와 프랑스가 갖는 매력에 끌린 것은 한국사회만이 아니다.이렇듯 전세계인들을 프랑스로 끌어들이는 매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신간 『악의 꽃에서 샤넬 No.5까지』는 그 답, 즉 프랑스 문화예술의 특징과 현주소를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책이다.

문학 ·음악 ·문화정책 등에서부터 건축과 회화,영화와 만화, 포도주와 치즈, 패션과 향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와 프랑스인을 이해하는 핵심주제 15개를 통사적 방법으로 각기 조망하고 있다.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에블린 마잘롱 교육담당 원장과 불문학과 ·건축공학과 ·의상학과 교수 등 국내 젊은 전문가들로 이뤄진 집필진의 글 모음이 자칫 해당 분야 정보의 다이제스트집으로 그쳤다면 이 책은 크게 주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프랑스 문화에 대한 생동감있는 묘사’라는 큰 그림을 보여주는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또 그것이 제1세계에 대한 공허한 환상만이 아니고,상대적으로 빈곤한 우리 사회의 오늘을 비춰보는 거울로 기능하기 때문에 이 신간은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귀족들만이 즐겼던 포도주에 대해 프랑스 혁명 당시 소시민 계층이 “물을 마시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며 집착을 보이게 된 과정을 설명하며 포도주의 역사를 계급의 역사 또는 민주화의 역사와 결부시키고 있는 대목은 일반적인 와인 전문서적과 차별되며, 고풍스런 루브르 박물관과 그 진입로에 설치된 초현대식 유리 피라미드의 대비가 갖는 의미를 해설하며 신 ·구시대의 문화를 아우르려는 프랑스인들의 문화의식을 거론하기도 한다.

또 과거의 명성에 비해 초라해진 프랑스 영화의 현실에 대해 “지난 20여년 간 세계 영화에 불어닥쳤던 변화의 바람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온 것”을 지적하고,팍스아메리카나에 대응하는 프랑스 문화정책에 관해선 아예 한 장을 할애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프랑스 문화예술의 가장 큰 특징도 유념할 만하다.

즉,고대 이집트나 이탈리아의 그것처럼 ’특권층만이 향유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서민들의 삶의 질로 실현된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또한 그것은 바로 프랑스대혁명과,이후 정부와 국민이 함께 참여한 일련의 적극적인 대내외 문화정책을 통해 이루어져왔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주제와 필자에 따라 글의 맛도 조금씩 다르다.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의 걸작 ‘라스코 벽화’ 이야기로 시작되는「역사」편이나 거론할 작가들이 많은 「문학」「회화」편 등은 아무래도 백과사전식 나열이 없지않다.

반면 「건축」이나 「만화」 등은 보다 분석적이며 「포도주와 치즈」편에선 프랑스의 다양한 치즈 얘기 속에 드골 전 대통령이 프랑스인들의 변덕스런 정치적 구미를 “2백58종의 치즈를 만들어내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겠는가”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보여주는가 하면「미식」편에선 부르고뉴식 쇠고기찜 요리법까지 실어놓았다.

평이한 문체와 내용,그리고 요령있는 편집 덕분에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용어설명이나 연표 등 보충자료도 풍부한 편이나 책에 언급된 관련 인터넷사이트 중엔 주소가 일부 부정확하다.

한국 문화예술의 현주소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 한국 문화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문화교양서 이상이다.

김정수 기자

<관련사이트>

(프랑스 일반),

(주한 프랑스 대사관),

(프랑스 문화부,프랑스어),

(포도주, 프랑스어),

(치즈, 영어),

(요리,영어 ·프랑스어),

(패션,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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