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유란의 생생문화체험① - 드로잉쇼

중앙일보

입력


무대에서 만나는 새로운 미술체험

3명의 외계인 룩(Look)이 우주 비행중 지구로 불시착한다. 이들이 지구인과 소통하는 방법은 오직 그림(드로잉)과 몸짓 뿐이다. 공연이 펼쳐지는 90분간 이들은 재빠르게 그림을 그리고 흥겨운 몸짓으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드로잉쇼>는 2008년 7월 초연을 시작으로 800회 이상 공연된 장기공연이다. 이미 대학로에 드로잉쇼 전용관을 구축해 현재까지 10만 명의 관객들을 거뜬히 소화해냈다. 전 연령대를 아우르기에도 손색없다.

기발한 그림 도구들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참신하다. 손가락을 이용하는 핑거드로잉, 그림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는 워터드로잉, 빛을 이용하는 쉐도우 드로잉 등 색다른 소재와 기법을 활용했고 특수효과도 더했다. 연필이나 붓으로만 그림 그리는 것을 생각한 관객들은 익숙한 것에서 웅장한 그림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사고들을 그림으로 담은 것 또한 특징이다. 2008년 2월, 화재로 인해 소실되는 국보 1호 숭례문의 모습을 <드로잉쇼>는 그림으로 재현한다. 이를 바라보며 눈물 흘리는 이순신장군의 모습은 모든 관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미술과 무대의 환상적인 만남

이렇게 그림이 공연 속에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드로잉쇼>는 미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우리의 낯익은 관념과 지난날도 모두 어루만진다. 미술과 무대의 환상적인 만남, 마술같은 미술, 넌버벌 퍼포먼스(비언어극)라고 표현되는 공연의 특징에서 가장 주목할점은 완성된 그림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더 집중한다는 점이다.

연출자 김진규 감독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한데, 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하는 작은 의문에서 <드로잉쇼>의 발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결과에 중점을 두는 우리 사회에 <드로잉쇼>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공연의 주된 부분은 ‘과정’이 압도한다. 관객은 점점 그 과정에 매료되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완성된 작품보다는 만드는 과정에 대한 여운이 크게 남게 된다.

때문에 공연의 관람 포인트는 흘러가는 과정을 그저 즐기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 나올까하고 결과만을 고대할 것이 아니라, 과정 하나하나를 결과처럼 받아들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완성된 작품에 도달하게 된다.

정상만을 바라보며, 아직도 올라갈 길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투덜대는 사람에게 <드로잉쇼>는 큰 바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쉬엄쉬엄 걸으며 주위의 꽃, 흙, 나무들과 이야기 해보라고 권한다. 90분간의 멋진 공연을 통해 우리는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익히게 될 것이다.

문화기획집단 문화아이콘 대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