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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장 이 문제] 경남 통영 죽음 부르는 신호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구조가 잘못된 도로를 신호까지 무시하고 과속하는 차 때문에 불안해서 못살겠어요. "

경남 통영시 도산면 도선리 노전마을 주민 1백여 명은 지난달 28일 마을 앞 통영~고성 국도(14호)에서 집회를 열고 교통사고 예방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24일에는 마을 앞 횡단보도에서 숨진 李모(54.부산시 부산진구 연지동)씨의 노제를 지내면서까지 "도로구조를 바꿔달라" 고 촉구했다.

마을 청년회도 도로를 확장한 부산지방국토관리청과 통영시를 최근 방문해 대책 마련을 촉구했으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도로점거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1987년 왕복 4차로로 확장된 이 도로는 사고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신호등은 S자 커브길 가운데 설치돼 있는데다 도로 경사가 심해 운전자가 보행자를 발견하기 어렵게 돼있다. 통영쪽 길은 내리막이 끝나는 곳에서 불과 3백m쯤 떨어진 지점에 횡단보도가 설치돼 과속으로 달리는 차량이 신호를 무시하고 계속 질주하기 일쑤다.

학섬휴게소 근처의 예비 신호등도 고갯길 꼭대기에 있어 과속 차량은 보기가 쉽지않다. 맞은편 방향의 오르막을 과속으로 달리는 차량 중에도 속도를 줄이기 귀찮아 신호를 무시하는 차량이 많다.

주민들은 커브길 너머에서 차량이 달려오는 줄도 모르고 무단으로 횡단하거나 보행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다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 신호등이 설치된 90년 이후 마을 주민 12명 등 17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주민들은 96년에는 교통사고로 숨진 주민의 상여를 앞세우고 도로를 점거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지하통로와 교통사고 위험 표지판 설치, 교통순찰 강화, 무인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등을 요구하고 있다.

李희동(53)이장은 "마을에서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 집이 없다" 며 "당국은 예산타령만 하지말고 주민들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근본 대책을 하루 빨리 세우라" 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통영시와 경찰 관계자는 "우선 교통순찰차와 이동식 무인 과속단속기를 고정배치해 과속 차량을 집중단속하고 지하통로 설치를 검토하겠다" 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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