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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본교과서 왜곡 강경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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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역사 교과서의 과거사 왜곡 문제와 관련, 정부가 28일 이한동(李漢東)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여는 등 강력 대응 방침을 결정한 것은 이례적이다.

1982년 과거사를 왜곡한 일본 역사 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을 통과했을 때도 정부는 외교부 등 주무부처 차원에서의 대응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비록 포괄적 표현이지만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 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3.1절 기념사에 포함시킨 것도 강경 대응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일본의 역사 왜곡 문제를 이번 기회에 매듭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정부 의도대로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정부의 강경 대응에는 외교 채널을 통한 '우려의 전달' 만으로는 일본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이 제출한 수정본의 문부성 통과를 저지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역사 왜곡 교과서 사건을 계기로 한.일간 역사의 악순환을 확실히 끊겠다는 게 정부 방침" 이라며 "李총리가 직접 관련 회의를 주재하는 것도 이의 일환" 이라고 밝혔다.

또한 정부의 강경 방침 이면에는 국민 사이에 일고 있는 반일감정과 '미온적 대처' 라는 정부에 대한 비난을 조기에 진화할 필요성이 내재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인터넷.PC통신 게시판에는 반일감정을 고조시키는 글과 정부의 대처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하루 수백건씩 오르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는 시위까지 준비하고 있다.

◇ 단계적 대응책과 한계〓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이날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주한 일본대사를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로 불러 일본 정부의 현명한 대응을 촉구한 것도 강경 대응의 일환이다.

李장관은 올들어 두번씩이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외상과 전화통화를 해 우리 정부와 국민의 우려를 전달했음에도 또다시 데라다 대사를 불렀다. 정부는 가능한 모든 외교 채널을 동원해 일본 정부에 영향력이 있는 유력 정치인들을 상대로 검정 통과 저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나, 일본의 성의 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일본 대중문화 개방 중단, 한.일 청소년 교류폭 축소 등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시각이다. 우선 지지도가 바닥까지 떨어져 사퇴설이 나오는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내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또 일본 정부는 "아직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며 시간을 벌려 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요구에 일본은 마이동풍(馬耳東風)식으로 나올 가능성이 커 고민" 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수정 교과서가 문부성을 통과하는 3월 말 그 내용에 따라 사태 악화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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