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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명인] 1. 낙죽장 김기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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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수없이 듣는 말이지만 조상의 지혜와 숨결이 남아 있는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은 날로 엷어져 가고 있다.한평생 망치를 두들기고 붓을 다듬거나 흙을 빚으면서 외길 인생을 살아온 장인(匠人).

그들은 저 멀리 강원도의 산골에서,그리고 다도해의 바닷가에서 전통문화의 맥을 잇기 위해 오늘도 묵묵히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경칩(驚蟄)을 앞두고 꽃샘 폭설로 뒤덮힌 강원도 산간지방은 겨울로 돌아갔다.그러나 남도(南道)에는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빗방울이 봄을 재촉한다.

나들이하기에 좋은 계절이다.잊혀져 가는 우리 것을 깨우쳐 주는 ‘이 시대의 명인’을 찾아 길을 떠나본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방석 위에 가부좌를 튼 낙죽장(烙竹匠.중요무형문화재 제31호) 김기찬(47)씨. 인두를 잡은 그의 오른손이 대나무 위를 날렵하게 움직일 때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사이로 사슴이 뛰어다니고 포도가 탐스럽게 영근다. 마치 붓으로 수묵화를 그리듯 대나무에는 한폭의 동양화가 펼쳐진다.

병풍.가리개.족자.액자처럼 한지.목판.가죽.비단 등의 평면에 그려넣는 낙화(烙畵)와 달리 낙죽(烙竹)은 대나무의 곡면을 따라 인두로 문양.글씨를 표현한 것으로 필통.합죽선.선추침통(扇錘鍼筒.합죽선 고리에 매달린 장식물).죽패도(竹佩刀) 등의 공예품을 장식하는 기법이다.

조선시대 순조 22년(1822) 남원사람 박창규(朴昌珪.1796~1855)가 동지상사 김노경을 따라 중국 연경(燕京.지금의 북경)에 들어가 배워온 것이 국내 낙죽의 효시다. 당시 박창규는 '화화도인(火畵道人)' 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5대 후손까지 이어오다 1950년대에 이르러 집안의 맥이 끊겼다. 이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에 설명되어 있다.

낙죽은 대나무 위에 낙을 넣는 것이기 때문에 담양을 중심으로 전남지방에 널리 보급됐다. 그래서 69년 1대 낙죽장으로 지정된 고(故) 이동련옹이나 87년 뒤를 이은 2대 낙죽장 고 국양문옹도 고향이 담양이다.

82년 광주시의 한 화실에서 사군자를 배우던 김씨는 화실 원장의 친구인 장도장(粧刀匠.무형문화재 제60호) 박용기(71.전남 광양시)옹의 주선으로 이옹을 만나면서 낙죽에 입문하게 됐다.

대나무에 낙을 넣을 때 인두가 뜨거우면 너무 검게 되고 식으면 무늬와 글씨가 희미해지기 때문에 온도와 손놀림이 조화를 이뤄야 낙죽의 아름다움이 의도했던 대로 나타난다.

가부좌를 틀고 낙을 넣는 작업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쉽지 않아 김씨는 처음 배울 때 이옹에게 수없이 야단을 맞았다.

김씨는 "낙죽은 4~5년만 배우면 어느 정도 흉내를 낼 수 있지만 단순 기술자에 그칠 수도 있다" 며 "공예적인 시각을 갖고 전통을 해치지 않는 범주내에서 대나무 작품을 만들고 낙을 넣을 수 있는 창의력이 필요하다" 고 강조한다.

이옹과 국옹은 주로 대나무 베개.차반.합죽선 등 다른 분야의 장인이 만든 작품에 낙을 넣었다. 그러나 김씨는 비녀.얼레빗.불자(拂子.불가에서 큰 스님이 법을 전할 때 사용하는 먼지털이처럼 생긴 것) 등 공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 특징이다.

김 씨는 99년 노동부에서 얼레빗 기능전승자로, 지난해에는 문화재청에서 국옹에 이어 3대 낙죽장으로 지정받았다.

김씨는 그동안 전승공예대전 문화재위원장상을 비롯해 각종 공예품 경진대회에서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미국.독일.태국 등에서 순회전도 열었다.

작품으로는 비녀와 불자가 손꼽힌다. 그중 불자는 말총.야크털로 제작했다. 그러나 송광사 법당에서 1백8배를 하면서 '머리카락으로도 불자를 만들 수 있다' 는 생각에 5년간 머리를 길러왔으며 올해 안에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불자를 제작할 계획이다.

그러나 김씨는 "머리카락으로 불자를 만들려면 머리카락을 잘라 크기와 위.아래를 구분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 무척 걸린다" 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후진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만 15~25세 남녀 전수생을 모집 중이다. 교육(주 1~2회)은 다음달부터 시작되며 무료다. 수료 후에는 문화재청에서 이수증을 발급한다. 현재 송광사 경내 금죽헌미술관(061-755-2105)에서는 김씨의 얼레빗전(한국산업인력공단 후원)이 열리고 있다.

순천〓김세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송광사 일대 볼거리>

송광사는 조계종 3대 사찰(승보사찰)의 하나로 경내에는 국제선원과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조계산(8백84m)의 굴목재를 넘으면 신라 경문왕 1년(862) 도선국사가 창건한 선암사로 연결된다. 선암사는 태고종의 본산. 경내에는 보물 7점과 12점의 지방문화재, 그리고 석교(石橋)의 극치미를 자랑하는 승선교가 있다.

송광사에서 벌교 방향으로 향하면 승용차로 10여분 거리에 고인돌공원(전남 순천시 송광면 우산리.061-755-8363)이 있다.

주암댐 건설로 수몰지역에 있던 선사 유적을 한 곳으로 옮겨 복원해 놓은 곳이다. 고인돌 1백40여기, 선사시대 움집 6동, 구석기시대 집 1동, 남북방식 모형 고인돌 5기 등을 모아 놓은 야외전시장과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 전시관, 전남지방 시대별 묘제 변천과 영상실을 겸한 묘제 전시관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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