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대학마저 토건 경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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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겉치레와 자본의 논리에 매몰된 우리 대학의 허장성세(虛張聲勢)는 토건(土建) 경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의 주요 사립대들이 잇따라 ‘경기도 캠퍼스 시대’를 선언하고 있다. 연세대 송도캠퍼스가 문을 열었고, 2006년부터 파주시에 캠퍼스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이화여대를 필두로 성균관대와 중앙대, 동국대와 건국대가 경기도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최근에는 서강대가 캠퍼스 확장 대열에 뛰어들었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학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는 경기도와, 서울에서는 부지 확보가 어려워진 대학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지만 관학유착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인천지역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연세대가 인천시와 송도캠퍼스 부지를 조성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계약하고, 캠퍼스 조성비용도 부지 내의 주거용지와 상업용지 개발이익으로 충당하는 것은 명백한 특혜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 정도면 어느 사립대학이라도 발 벗고 나설 만한 확실한 땅 장사에 부동산 투자가 아닌가.

물론 이들 대학이 내세우는 명분은 ‘부족한 교육시설의 확충을 통한 대학의 경쟁력 제고’다. 그러나 교육시설 부족도 따지고 보면 질적인 성장보다는 몸집 불리기에 급급해온 대학의 자승자박의 결과다. 통계청이 2014년부터는 대학의 학령인구도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상황에서 캠퍼스 확장 경쟁은 아무래도 명분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서울 소재 대학들의 경기도 진출은 수도권 분산과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도 어긋난다.

국가적 과제가 된 ‘대학의 경쟁력 제고’라는 차원에서만 봐도 이와 같은 외형 확장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캠퍼스 부지를 넓히고 최첨단 건물을 짓는 데 돈을 쏟아붓는다 해서 교육의 질이, 경쟁력이 세계적 수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목도하고 있다. 아이비리그에 버금가는 명성과 경쟁력을 갖춘 미국의 윌리엄스대와 애머스트대, 칼턴대학이 캠퍼스 부지가 넓어서, 학생 수가 많아서 세계적인 대학으로 평가 받는 것인가. 학부중심 대학이긴 하지만 이들 대학과,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을 배출한 웰슬리대학의 학생 수는 2000명 수준이다. 이들의 경쟁력은 특정한 학문 영역을 선택해 차별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시행하고, 교수 1인당 학생 수를 10명 이하로 낮추고 장학금 혜택을 늘리는 등 외형이 아닌 교육의 질과 직접 관련된 분야에 자원을 집중한 결과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대학의 실정은 어떤가. 멀티플렉스를 능가하는 초호화시설을 갖춘 서울 유명 사립대들조차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정작 20~30명을 웃돌고, 전임교원의 강의 담당 비율도 평균 50%대에 머물고 있다. 중앙일보 탐사팀이 ‘대학 등록금 그 불편한 진실’ 시리즈에서 제기한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달하는 사립대학 적립금의 부당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제는 대학의 재원과 역량을 토건사업이 아닌 교육의 질을 담보할 수 있는 ‘사람’에 쏟아부어야 한다. 그 돈이면 재정문제를 이유로 외면해 왔던 시간강사, 비전임교수들의 불안정한 지위와 처우문제를 해결해 비싼 등록금에 합당한 수준으로 교육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 돈이면 장학금 규모를 늘려 학생들이 등록금 부담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학업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고리도 끊을 수 있다. 그래야만 사학이 공공재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국가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도 사회적 동의를 얻게 될 것이다. 교육은 리스크가 가장 적은 투자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그 투자의 용처가 땅과 건물이 아닌 사람이었을 때만이 가능한 명제다.

김미라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