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문제 '노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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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어두워지자 길이

그만 내려서라 한다

길 끝에서 등불을 찾는 마음의 끝

길을 닮아 물 앞에서

문 뒤에서 멈칫거린다

나의 사랑은 얼마나 어둡길래

등불 이리 환한가

내 그림자 이토록 낯선가

등불이 어둠의 그늘로 보이고

내가 어둠의 유일한 빈틈일 때

내 몸의 끝에서 떨어지는

파란 독 한 사발

몸 속으로 들어 온 길이

불의 심지를 한 칸 올리며 말한다

함부로 길을 나서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죄

- 이문제(1959~ ) '노독'

이 글을 읽고, 또 읽으면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세상의 끝 같다.

딛고 있는 내 발 밑이 벼랑 같아서 발끝이 간질간질하다.

삶을 함부로 낭비하지 말라. 그는 이따금 홀로 술마시다 섬진강으로 전화를 한다.

그의 외로움이 내게 닿을 때 나도 외로워서 강으로 간다.

김용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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