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불안한 것들을 소설로 답하죠…메시지 정하고 쓰지는 않아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편혜영씨는 “카프카의 『성』처럼 모호하거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처럼 묵직하고 더디게 읽히는 작품들에 끌린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소설가 편혜영(38)씨는 ‘결단’ ‘전략’ 등의 낱말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의 소재, 즐겨 쓰는 소설적 장치, 불러 일으키는 감흥 등이 그런 느낌을 준다. 문학판이 돌아가는 모양을 주의 깊게 관찰한 후 미학적인 판단에 따라 제대로 먹힐 것 같은 작품을 발표하는 것 같다. 그만큼 편씨의 ‘문학적 성공’은 극적인 데가 있다.

편씨는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하지만 정답처럼 반듯한 소설을 선보인 그에게 좀처럼 작품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 반전은 2005년 첫 소설집 『아오이가든』의 표제 단편 ‘아오이가든’을 발표한 2003년부터다. 역병이 창궐하는 도시의 고립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살점 튀고 피 흐르는 이야기에 문단은 ‘국내 최초의 하드고어 소설’ ‘기존 소설과 다른 새로운 발성법’ 등의 표현을 쏟아냈다. 2007년 소설집 『사육장 쪽으로』 역시 ‘섬뜩하다’는 평을 받았다. 상복도 있는 편이다. 한국일보문학상·이효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편씨가 첫 장편소설 『재와 빨강』(창비)을 펴냈다. 자연스럽게 이전 작품집들의 연장선 위에서 읽게 된다. 표현이 더 센가, 여전히 삐딱한가, 소재가 충격적인가, 등의 궁금증이 이어진다.

『재와 빨강』은 감기 비슷한 전염병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시기에 C국에서 파견 근무하게 된 ‘그’의 이야기다. ‘아오이가든’은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 당시 홍콩의 한 실제 아파트가 모델이었다. 이번 장편에서 전염병은 신종플루가 분명하다. 그는 공항 입국장에서 감염을 의심받는다. 하지만 검역원으로부터 전염병이 치명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럼에도 감염 의심자에 대한 격리와 규제는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집요하고 철저하게 이뤄진다. 정작 난감한 것은 정확한 사태 파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C국 언어가 서툴고 휴대전화마저 분실한 그는 사실상 고립된다. 전염병의 공포는 소문과 피상적 관찰을 통해 증폭될 뿐이다.

재난 소설, 디스토피아 소설 같던 분위기는 2부에서 인간의 동물적 한계를 주목하는 쪽으로 바뀐다. 파견 직전 만취 상태에서 전처를 살해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는 낯선 이들이 방문하자 격리 숙소를 탈출한 끝에 부랑자로 전락한다. 시궁창에서 쥐와 음식을 다투고 살인에도 가담한다. 개인적 생존기로의 시점 변화다.

26일 인터뷰에서 편씨는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어떤 메시지를 미리 정해 두고 그에 맞춰 소설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소설 속 엽기적인 장면에 대해서는 “유머 넘치는 작품에 대해서도 왜 그렇게 쓰느냐고 묻느냐”며 “내 상상력의 회로가 다를 뿐”이라고 했다.

편씨 스스로의 불안, 모호하고 불분명하지만 그래서 매혹적인 것들에 대해 소설을 통해 답하다 보니 낯선 작품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소설 읽는다고 큰 공부되겠느냐. 다만 내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견고한 어떤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이 한 번쯤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교한 전략보다 어둡지만 자유로운 상상력에 따라 글 쓴다는 얘기였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