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놈지도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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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의 설계도를 낱낱이 밝혀낸 지놈지도가 완성됐다.

지난해 6월 인체지놈의 초안 완성에 이어 불과 8개월 만에 이뤄낸 쾌거란 점에서 우리는 미국 등 다국적 컨소시엄과 셀레라사 과학자들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놈지도의 완성은 인류가 사상 최초로 유전적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제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난치병 예방과 치료는 물론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맞춤형 인간까지 가능하게 됐다.

그러나 지놈지도의 완성은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부작용을 예고한다.

첫째, 유전자 차별이다. 부와 권력에 이어 이젠 유전자마저 차별당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대물림하는 유전자의 속성상 부와 권력을 지닌 계층이 우량 유전자를 대대손손 독점하는 상황이 우려된다. 사생활 침해도 문제다.

개인의 유전정보 유출은 질병유전자를 지닌 사람의 취업과 보험가입을 제한하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놈지도 등 첨단 생명과학기술이 미국 등 특정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다국적 컨소시엄이라지만 미국과 영국을 뺀 나머지 국가는 이름만 걸친 들러리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국은 지놈정보의 공개를 천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천문학적 연구비가 투입된 연구결과를 이용하는 데 무임승차란 있을 수 없다.

이미 질병유전자 등 상업적으로 가치있는 지놈에 대해선 특허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지놈정보는 모두 공유해야 할 인류 공통의 자산이다. 지놈혁명의 혜택이 특정국가와 특정계층에 돌아간다면 불행한 일이다. 이 점에서 국가간 지놈연구를 공동 추진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

우리도 지놈연구를 서둘러야 한다. 정보통신기술에 이어 생명공학기술마저 미국 등 선진국에 예속될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반도체에 이어 우리 산업을 부흥시킬 차세대 사업인 생명공학기술에 보다 많은 지원과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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