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쾌속세대의 밴쿠버 질주는 ‘준비된 기적’이었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따낸 한국 선수들이 태극기를 빙판에 펼친 뒤 지신들을 가르친 코치들을 향해 큰절하고 있다. 시상식에서는 ‘시건방춤’을 추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밴쿠버 로이터=연합뉴스]

대한민국은 2010년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지배자였다. 이번 올림픽만큼 한국이 하루도 빠짐없이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대회는 없었다. 첫 금메달을 따낸 이정수로부터 여자 피겨를 제패한 김연아에 이르기까지, 시상대에 오른 한국 선수들은 세계를 향해 새로운 겨울스포츠 강국의 탄생을 알렸다.

한국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대회를 통해 겨울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한국이 거둔 금메달은 17개였고, 모두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스피드스케이팅에서 3개, 피겨에서 1개, 쇼트트랙에서 2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빙상 경기의 3대 이벤트에서 고르게 우승한 것이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을 상징하는 종목인 남녀 500m와 남자 1만m에서 우승했다.

이만하면 빙상의 메이저로 떠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메이저 한국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기적은 우연처럼 보여도 필연이 내재돼 있다. 돈과 기술과 사람과 시간의 투자가 있었다. 인프라가 있었고 사람 관리가 있었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겨울올림픽 유치 위해 꼭 필요”
대부분의 겨울 스포츠를 선진국 스포츠로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투자든 시설이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는 돈이 든다. 메이저 한국을 위한 돈은 삼성이 댔다. 삼성은 대한빙상연맹에 1997년부터 매년 8억∼12억원씩, 지금까지 총 120억원을 지원했다. “세계는 ‘기적’이라 부르고 우리는 ‘결실’이라 말합니다”라는 삼성의 신문광고는 이 같은 사실을 요약한 카피다.

기적과 결실의 중심에 이건희 전 삼성 회장과 대한빙상연맹 박성인 회장이 있다. 이 전 회장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서, 박 회장은 한국선수단 단장으로서 밴쿠버 현지를 누비며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다. 박성인 회장은 밴쿠버 올림픽 직전인 지난달 16일 중앙SUNDAY와 인터뷰에서 빙상연맹을 맡을 때의 일화로 ‘밴쿠버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한국 빙상의 도움닫기가 이미 12년 전에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다.

박성인 회장은 대한레슬링협회 부회장으로 일하던 97년 어느 날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의 부름을 받는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빙상 종목 육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여름 스포츠의 기본은 육상입니다. 겨울 스포츠의 기본은 빙상이죠. 우리나라가 앞으로 겨울올림픽을 유치하려면 빙상 종목을 반드시 육성해야 합니다.”

당시는 빙상 하면 쇼트트랙뿐이던 시절이다.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의 경기력은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 입상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 회장은 이미 이때 겨울올림픽 유치를 생각했다. 한국이 대회 개최를 요구하려면 겨울 스포츠의 기본인 빙상 3개 종목에서 성적을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빙상연맹을 맡은 박 회장은 마스터플랜부터 수립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밴쿠버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2010년에 열리는 겨울올림픽부터는 빙상의 3대 종목에서 한국 선수가 반드시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목표의식에서 출발했다.

밴쿠버 프로젝트는 착실히 행동에 옮겨졌다. 박성인 회장은 “삼성이 지원하는 예산은 모두 경기력 향상을 위해 투자됐다”고 말했다. 빙상연맹은 국내 빙상 대회를 활성화하고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 적극적으로 선수를 파견했다.

빙상 스포츠 저변 확대를 위한 꿈나무 발굴과 육성에도 힘써 상금과 장학금을 내걸고 꿈나무 대회를 신설해 체계적인 유망주 키우기에 들어갔다. 김연아가 바로 이 대회 입상자다. 김연아는 꿈나무 대회에서 3연속 우승한 뒤 2003년 국제 주니어대회에서 우승하며 단숨에 한국 피겨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남녀 500m에서 우승한 모태범과 이상화, 1만m에서 우승한 이승훈 등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밴쿠버 올림픽 이전에 벌어진 월드컵 스피드스케이팅 대회에 모두 참가했다. 그 결과 매번 달라지는 링크의 빙질이나 경기장 분위기에 쉽게 적응했다. 링크의 얼음이 단단하든 무르든 한국 선수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인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의 무른 빙질 때문에 세계적인 강호들이 고전하는 가운데서도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했다.

선수의 재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되 기술적인 부문은 전문가의 손에 맡겼다. 김연아는 훈련의 대부분을 캐나다에서 했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는 국내에서 열리는 전주 4대륙 대회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국제빙상연맹이 김연아의 출전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빙상연맹은 김연아의 입장을 존중해 중재에 나섰다.

김연아·모태범 키즈 얼마든지 가능
겨울올림픽 경기들은 전형적인 선진국 스포츠다. 많은 투자와 시설, 첨단의 스포츠 과학이 뒷받침돼야 성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과 피겨, 스키 종목은 스포츠 선진국들이 정면 충돌하는 겨울 스포츠의 ‘레드 오션’이다. 레드 오션 무대에서 승리하는 나라들이야말로 진정 겨울 스포츠의 선진국이다. 한국은 이 격전장에 뛰어들어 역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빙상에서의 성공은 비인기·소외 종목의 미래에 대해서도 힌트를 제공한다. IOC 위원이기도 한 이건희 전 회장은 비인기 종목 육성에 관심이 크다. 그는 긴 호흡으로 먼 미래를 내다보고 투자한다. 78년 제일모직 여자 탁구단을 창단할 때는 “10년 안에 중국을 꺾기 위해 지금부터 자질 있는 어린 우수 선수를 찾아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빙상연맹 박성인 회장은 당시 제일모직 탁구단 감독이었다. 박 회장은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유망주를 찾아 전국을 누볐다. 박 회장이 전북 이리(현재 익산)에서 찾아낸 선수가 중학교 2학년이던 양영자였다. 양영자는 정확히 10년 뒤인 88년 서울올림픽에서 현정화와 짝을 이뤄 중국을 누르고 금메달을 땄다.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즉답을 받기 어렵다. 부족함 없는 투자와 오랜 기다림만이 결실을 약속하는 것이다.

기약 없이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새벽에서 아침에 이르는 시간은 짧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첫 올림픽 수영 금메달을 안긴 박태환도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부정 출발로 실격당해 경기를 해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피부가 새카맣게 탄 소년의 얼굴에는 그늘이 짙었지만 그의 등 뒤에는 한낮의 태양이 찬란했다.

한국 스포츠는 밴쿠버 올림픽을 통해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확인했다. 돈과 기술과 과학과 국제 감각이 필요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그런 점에서 밴쿠버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거둔 눈부신 성적은 대한민국의 ‘선진국 선언’과 다름없다.

물론 한국은 스키나 아이스하키 같은 종목에서는 세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스키 종목은 스피드스케이팅만큼 경쟁국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스키는 겨울 스포츠의 강국들이 메달을 석권하는 대표적인 선진국-귀족-백인 스포츠로 통한다. ‘눈과 얼음의 제전’이라는 겨울올림픽에서 한국은 아직 눈의 세계를 밟지 못했다.

이 분야에서도 한국은 도움닫기에 들어갔다. 지난해 개봉해 인기를 모은 영화 ‘국가대표’는 스키점프 대표선수들의 스토리를 다루었다. 한국의 김현기·최흥철·최용직 등 세 선수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했다. 이들의 목표는 최초의 결선 라운드 진출이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묵묵히 제 길을 가는 이들로 인하여, 언젠가는 눈 쌓인 정상에도 태극기가 휘날릴 것이다.

얼음은 제패했으나 눈은 도전 과제
봅슬레이는 가끔 신문의 스포츠 면에 해외 화제로 등장하는 종목이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27일 휘슬러 슬라이딩센터에서 열린 4인승 첫날 경기에서 1, 2차 시기 합계 1분45초29를 기록해 총 25개국 중 20위를 기록했다. 28일 열리는 3차 시기에서도 20위 이내에 들면 4차 결선레이스에 출전한다. 한국의 리더 격인 37세의 강광배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봅슬레이 선구자의 길을 걸어왔다.

스키점프나 봅슬레이 선수들은 사막을 건너는 대상(隊商)처럼 고독하지만 의미 있는 길을 걷는 선구자들이다. 이들의 스토리가 영화로 만들어지고 흥행에 성공하는 현상은, 국민이 이들 고독한 선구자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밴쿠버 올림픽은 국민의 응원 문화가 크게 변했음을 확인시켜준 대회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금메달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아니다. 27일 밴쿠버 겨울올림픽의 마지막 메달 밭이 될 것으로 기대했던 쇼트트랙 경기에서 한국은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다. 그러나 국민은 박수와 위로를 보냈고, 남자 500m에서 결승선을 눈앞에 두고 미끄러져 금메달을 놓친 성시백과 아쉬움을 나눴다.

밴쿠버에서 거둔 승리는 국민의 가슴에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자신감을 채워 넣었다. 97년 외환위기 때 꺾여버린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97년에 좌절을 경험한 세대는 70~8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들로서 근대화의 주역을 자임한 사람들이다. 모태범ㆍ이상화ㆍ이승훈 등 밴쿠버에서 선진 대한민국을 선언한 선수들은 한국이 세계 무대로 도약한 88년 이후에 태어났다.

이들은 배낭을 메고 세계 곳곳을 누비고, 어디에 나가서도 꿀리지 않는다. 금메달을 따낸 다음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르고 관중석을 향해 춤을 추어 보인 모태범은 이들 세대의 활달함과 자신감을 보여줬다. 이 천방지축 같은 세대에게는, 그러나 경기가 끝난 다음 경기장에 대형 태극기를 펼쳐놓고 그동안 고락을 함께한 코치들을 향해 큰절을 올린 쇼트트랙 남자 계주팀이 보여준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심지가 있다.

허진석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