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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아사다 마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5호 39면

#조훈현 9단과 서봉수 9단은 1953년 동갑내기다. 한국 바둑사에 다시 없는 라이벌인 두 사람은 73년 만 스무 살에 처음 만났다. 37년 동안 반상에 마주 앉기가 363번이었다. 통산 전적 119승244패. 서봉수는 세 번 싸우면 두 번을 졌다. 하지만 그는 절대적 1인자에게 끊임없이 도전했다. 조훈현이 15년간 국내 전 타이틀을 석권하는 동안 서봉수는 전 타이틀 도전권을 장악했다. 호락호락 독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On Sunday

89년 제1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을 제패한 조훈현은 중앙일보에 자신의 바둑 인생을 연재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서 9단은 15년 가까이 나의 라이벌이 되면서 내가 커 나가는 데 도움을 줬다. 누구라도 혼자서 커 나갈 수는 없다. 항상 자극을 주고 분발하게 해 주는 상대가 있을 때 커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고비마다 호적수가 되면서 나를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 줬다. 바둑은 숙적이 있을 때 발전했다.”

조훈현이 1인자로 군림한 15년이 ‘조훈현 시대’가 아닌 까닭이 여기 있다. 승률은 서 9단의 패배를 말하지만 한국 바둑의 80년대는 ‘조(曺)-서(徐) 시대’로 남았다.

#김연아는 완벽한 연기로 승리했다. 승부의 결정판인 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를 23.06점이나 멀찍이 앞서며 완승을 거뒀다.

동갑내기 라이벌 김연아와 아사다는 14세에 처음 맞붙었다. 2004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대회였다. 김연아는 35.08점을 뒤진 2위였다. 아사다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2005년 세계주니어선수권도 다르지 않았다. 2006년 같은 대회에서야 김연아는 아사다를 2위로 밀어냈다. 하지만 주니어 무대에서는 아사다가 절대 우위였다. 조훈현의 말처럼 당시의 아사다는 김연아를 더 연습하고 분발하게 하는 상대였을 것이다. 시니어 무대에서 김연아는 한 발씩 앞으로 나갔다.

지난해 아사다는 부진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사람의 승부가 기울었다. 언론은 김연아의 금메달이 ‘예약’됐다고 일찌감치 예측했다. 하지만 아사다는 간단치 않았다. 24일 쇼트프로그램에서 보여 준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김연아와 정반대로 희로애락을 숨기지 못하는 아사다는 이날 자신의 최고 점수를 보고 울음을 터뜨렸다. 지옥 같았을 슬럼프와 경기의 압박이 스스로도 대견한 연기를 마치고야 터져 나온 것이다.

끝내 아사다는 김연아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김연아와 같은 세대가 아니었으면 1등을 했을 것”이라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 여자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아라카와 시즈카의 말은 곧 아사다의 생각일 것이다. 승부가 갈린 직후 아사다는 NHK와 인터뷰에서 말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내 “돌이켜 보면 무척 즐거웠다. 이런 굉장한 무대를 또다시 즐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2014년 러시아의 소치 겨울올림픽을 기약했다.

2010년 여자 피겨의 1인자는 누가 뭐래도 김연아다. 하지만 김연아가 정상에 오르기까지 김연아와 아사다는 서로를 보며 커 나갔다. 또 김연아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기로, 아사다는 실전에서 2번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킨 최초의 여자 선수로 피겨를 발전시켰다. 세계 2위를 하고도 풀 죽어 있던 아사다에게, 그래서 말해 주고 싶다. 가장 위대한 선수와 싸운 너도 위대하다고.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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