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가 '거버넌스' 정비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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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년여전 금융위기가 동아시아에서 발생해 신흥시장경제권 전역으로 확산되며 세계경제를 강타한 이후 그 원인에 대한 국제적 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왔다.그 한 결과로 이른바 가버넌스(governance)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강조되기에 이르렀다.

요즈음 세계은행과 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위한 정책권고에서 가버넌스의 개선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한다.OECD도 가버넌스 연구를 강화하고 60개 이상의 비회원국을 대상으로 건전한 가버넌스를 촉구하는 정책대화를 전개하고 있다.

가버넌스란 국가자원의 관리에 대한 결정과 관련해 그 결정의 내용 자체보다는 그것이 도출되는 과정과 집행되는 방식을 중시하는 개념이다.간단히 말해서 국가의 다스림 기능(治)이 수행되는 방식을 말한다.이를 중국인들은 치리(治理)로, 일본인들은 협치(協治)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에서는 지배구조라고 번역하기도 한다.그러나 모두 만족스럽지 못하다.굳이 번역하자면 행치(行治)또는‘다스림’이 어떨런지.

어쨌든 가버넌스가 건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이 말은 국가 자원의 배분과 활용에 관한 결정이 과정적 측면의 건전함 또는 취약함의 정도에 따라 그 타당성과 효과 및 지속가능성이 좌우되고 또 그에 대한 평가가 국제자본시장에서 해당국의 신인도를 좌우함으로써 자본의 국내 유출입에 결정적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신흥시장경제권의 금융위기의 궁극적 원인이 바로 각 해당국의 매우 취약한 가버넌스에 있었다.모두 시장경제와 경제개방 및 경제안정을 지속적 경제성장의 금과옥조로 삼아 추구하고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러한 정책기조를 효과적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는데 실패했다.즉 효과적 시책들의 도출과 집행을 위한 과정 혹은 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건전한 가버넌스의 요체는 무엇인가.우선 여러 이해관계자들로 구성되는 다양화된 사회에서는 상호 이해관계가 얼키고 설킴에 따라 모두의 합의에 입각하고 아울러 객관적 합리성의 기준을 충족시키며 나아가 소기의 효과를 가져다 주는 정책 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을 주목하자.

이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결정의 도출과정과 집행방식 자체를 위와 같은 몇가지 조건에 맞게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다.시장경제와 개방경제 및 경제안정의 정책기조를 추구하되 그 과정이나 방식이 제도화되어야 하고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효율적이며,여러 제도들이 상호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개방적이라 함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 및 이들과의 협의가 보장됨을 의미한다.또 이들 제도가 효능을 보게 하려면 국정 운영 전반에서 법치주의와 책임주의 및 청렴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가버넌스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개발연대에 정부주도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억제하고 정부가 시장을 대체하다시피 하였다.그 결과 건전한 가버넌스의 요건이 무시되고 이로 인해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가 만연되고 경제의 총체적 부실이 초래되어 끝내는 경제위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국민의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기본적 정책이념으로 삼고 4대 경제개혁에 착수해 신속하게 경제위기를 극복한 바 있다.대체로 바람직한 제도의 발전을 지향하고 가버넌스의 개선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시장경제의 결과를 예단(豫斷)해 과정과 제도를 무시하고 특정적 결과를 직접 도모함으로서 가버넌스의 개선에 역행하는 예도 없지 않았다. 이 경우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투명성과 책임주의가 제한되고 그 결과 도덕적 해이와 부패,그리고 금융과 기업의 부실이 새로이 조장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또 그 결과로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사회적 규율과 신뢰의 회복이 저해되었다.작년초 이후 여러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던 원인도 가버넌스의 취약함에 있다.

이제 기업은 물론 국가의 가버넌스 정비에 착수해야 될 것이다.특히 경제구조조정을 추진함에 있어서 이제부터는 특정 결과치 보다는 그 과정의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이것이 바로 상시 구조조정체제의 도입방안이다.이른바 집단이기주의에 대한 대책도 여기에 있다.

楊秀吉(세계경제연구원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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