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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출자전환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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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현대건설에 대한 채권단의 출자전환은 지난해 현대사태가 불거지면서부터 예고됐다.

현대건설이 자구계획 마련을 미루며 시장의 불신을 더해가던 지난해 8월 당시 이용근 금감위원장은 '현대건설 출자전환 방침' 을 처음으로 밝혔다.

이후 현대의 위기설이 재연될 때마다 나돌던 출자전환설은 현대건설이 지난해 11월 20일 2조원대의 자구계획을 발표하면서 일단 수면 아래로 잠복하는 듯했다.

그러나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의 마지막 자구방안을 받아본 뒤 자구노력을 모두 성실하게 이행하더라도 독자생존이 어렵다고 판단, 출자전환 방안을 적극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중순께는 정부 일각에서 출자전환을 당장 단행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시장 상황과 현대의 자구노력을 지켜본 뒤 시점을 결정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 출자전환 왜 하나〓법정관리 등을 통해 처리하는 방법도 있지만 건설업종의 특성상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신규 수주 등이 막혀 회생하기 어렵다.

현대건설의 기술력이나 국내는 물론 해외 건설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따질 때 현대그룹에서 떼어내 살 길을 열어주는 것이 낫다고 정부와 채권단이 판단한 것이다.

정부는 특히 최근 안정되고 있는 자금시장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면 현대건설을 확실히 회생시키는 쪽이 낫다고 보고 있다.

채권단으로선 받을 돈을 주식으로 바꿔 투자하는 셈이므로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안게된다.

경영이 좋아지면 주가가 올라 빌려준 돈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엔 받을 돈을 모두 날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경영권은 조건부 보장〓출자전환은 부실기업에는 일종의 특혜이기 때문에 기존 대주주의 경영권을 박탈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대건설은 예외로 대주주인 정몽헌 회장에게 채권단의 주주권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일정기간 보장하기로 했다.

건설업의 특성상 인적 자원을 계속 유지해야만 경영정상화가 가능하고 이를 위해서는 鄭회장의 회사 장악력이 필요하다는 채권단의 판단이다.

여기에는 鄭회장 일가가 3천억원의 사재 출연과 충남 서산농장 매각 등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하는 한편 예정된 현대건설의 자구노력을 적극 유도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채권단은 1년 정도 경영권을 위임하되 경영이 정상화되면 鄭회장이 채권단 보유주식을 되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대신 회사의 경영정상화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면 鄭회장의 경영권을 언제라도 회수하고 주식매입 권리도 취소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출자전환하면서 부실 책임이 있는 대주주의 경영권을 계속 인정하는 것은 특혜시비를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인력감축 등 획기적인 경영혁신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됐다.

◇ 주식 소각 없이 시가로 출자전환〓출자전환은 대개 주식을 소각하고 액면가로 출자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대건설은 소액주주가 많아 시가대로 출자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했다.

주식을 소각하려면 정밀 실사와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85%에 이르는 소액주주들이 반대할 경우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건설업의 특성상 적정한 부채비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주식을 소각하면 채권단이 출자전환 금액을 크게 늘려야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시가로 출자전환해 부채비율을 2백%로 낮출 경우 채권단의 출자액은 7천억원이면 충분한 데 비해 50%만 주식을 소각하더라도 출자액을 1조6천5백억원으로 두배 넘게 늘려야 한다.

게다가 시가대로 출자전환하면 소액주주와의 마찰을 피할 수 있고 정밀 실사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회사 기밀이 외부로 유출되는 등 부작용도 막을 수 있다는 채권단의 판단이다.

시가 출자는 출자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의 주가에 따라 결정하는데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주당 약 1천3백원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31일 현재 현대건설 주가가 2천6백40원을 기록하는 등 크게 올랐기 때문에 출자전환이 이뤄지는 시점에 따라 채권단의 출자총액도 다소 늘어날 수 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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