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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上. 정치자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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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존재."

국회의원들이 정치자금 문제만 터지면 너나할것없이 '감방으로 달려 가는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상황은 16대 국회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헌 이래 현역의원으로서 수감된 81명의 구속 사유는 5공 말(12대)까지는 국회보안법 위반 등 정치적 이유가 많았다. 직선으로 뽑힌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1988년)한 직후의 13대부터는 뇌물수수 등 음성적 정치자금 문제가 압도적이다. 정치권에선 그러나 이들을 "재수가 없어서나 희생양으로, 아니면 정치보복에 걸린 것"으로 동정하는 분위기다.

◇ 수서사건 땐 하룻밤에 의원 5명 구속〓13대에 구속된 14명 중 12명이 개인비리 혐의였다. 특히 91년에만 현역 아홉 명이 구속돼 이 부문 기록을 세웠다.

2월 11일 외유 뇌물사건으로 이재근 상공위원장을 비롯해 박진구.이돈만 의원이 구속된 데 이어, 닷새 뒤에는 수서사건으로 다섯 명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6월에는 유기준 의원이 광역의원 후보 공천과 관련한 금품수수 혐의로 사법처리됐다.

한보주택이 관련된 수서지구 택지 특혜공급 사건은 청와대의 압력설이 가장 큰 쟁점이었지만 오용운 국회 건설위원장, 이태섭.김동주.이원배.김태식 의원 등 다섯 명이 구속되는 것으로 끝났다. 이중 김태식 의원은 무죄로 판명됐다.

검찰은 4년 뒤인 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이 불거지자 비로소 "정태수 한보 총회장이 당시 盧대통령에게 1백50억원을 뇌물로 주었다" 는 사실을 발표한다. 현직 대통령의 정치자금을 수사하지 못했던 검찰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이에 앞서 90년에는 뇌물수수 혐의로 박재규.이상옥 의원이 구속됐다.

李의원이 국유림 불하와 관련해 2천만원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되자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의원총회에서 "이 정도를 사건화하면 세계 어느 나라 의원을 막론하고 성한 사람이 많지 않을 것" 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 권력 실세도 철창 신세〓 '비자금 천국' 이었던 5, 6공에 대한 사정(司正)은 93년 문민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검찰은 4월 안영모 동화은행장의 비계좌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 사건은 '6공의 금융 황태자' 이원조 의원이 일본으로 출국한 직후 검찰이 김종인(전 청와대 경제수석)의원이 수뢰한 사실과 그를 사법처리할 방침을 서둘러 발표하면서 묻혔다.

金의원은 검찰에서 "당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으며, 나는 6공 인물 중 가장 깨끗한 편" 이라고 진술했다.

'6공 황태자' 로 불렸던 박철언 의원은 5월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인 정덕진.덕일씨 형제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이를 두고 "YS의 정치보복" 이라고 주장했다.

15대에서 비리의 하이라이트는 한보사건. 97년 2월 한보철강에 대한 특혜대출과 관련해 여야 33명이 줄줄이 소환됐고, 권노갑.홍인길.정재철.황병태 의원 등 네 명이 구속됐다.

盧전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박철언 의원에 이어 두 金씨의 오른팔인 권노갑.홍인길 의원 등이 교도소로 갔다.

정태수씨는 검찰에서 "조건 없는 돈이 어디 있느냐" 며 "나는 돈 받은 사람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다" 는 말을 남겼다.

◇ "구속 의원은 빙산의 일각" 〓현 정부가 출범한 98년에도 사정은 마찬가지. 8월에 서상목 의원을 출국금지한 데 이어 조사받은 의원이 16명에 달했다.

개인비리 혐의로 정대철 의원 등 여야 거물급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갔다. 이중 이신행 의원만 기아와 관련된 혐의로 구속됐다.

그해 徐의원 등에 대한 12건의 의원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부결되거나 폐기돼 '방탄 국회' 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박준규 당시 국회의장은 93년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에 휘말려 의원직을 사퇴했고, 김문기 의원은 의원직을 사퇴한 뒤 구속됐다. 법무장관 출신의 김기춘 의원은 "구속의원 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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