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습체포까지 해야 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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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구 여권에 대한 안기부 선거자금 불법 지원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야당 실무 당직자들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은 13일 새벽 여섯 명에 대한 기습 체포 작전에 나서 일부에서는 몸싸움을 벌이는 등 야당측과 마찰을 빚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연행했으므로 법 절차상 아무런 잘못은 없지만 검찰 수사 방법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선 이들은 새벽에 기습작전을 펴서 잡아야 할 만큼 사건의 중심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하위 당직자이거나 수행비서였다면 사건 본질인 자금의 성격이나 규모 등을 알 만한 위치가 아닐 것이다.

기껏해야 심부름이나 했을 정도인 데다 현행범도 아니라면 보다 책임있는 인물부터 조사하는 게 순서가 아니겠는가.

법적으로 형사책임을 묻기도 어려워 보이는 곁가지 참고인들을 연행하느라 사회적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야당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한 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

또 일부의 분석대로 소환에 불응하고 있는 강삼재(姜三載)의원이나 한나라당에 대한 고강도 '압박작전' 이었다면 더욱 옳지 못하다.

공권력이 냉철함이나 순수성을 잃고 어떤 정치적 의도를 갖고 움직이는 것은 금물이다. 가뜩이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 검찰권 독립이 의심받는 마당이니만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사건에 접근하는 일은 특히 삼가야 한다.

이 사건은 구 여권에 지원된 정치자금의 성격, 즉 국가예산 여부와 규모, 수법 등을 밝히는 일이 핵심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검찰이 모두 본질을 외면한 채 마치 사활을 건 승부 게임을 하는 듯 흥분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다.

姜의원도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받지 않게끔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해 밝힐 것은 밝히고 검찰도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수사를 해야한다.

지금은 한나라당과 검찰 모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사건의 본질 규명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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