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구를 위한 미디어 렙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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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방송광고판매대행(미디어 렙)에 대한 법률안을 둘러싸고 규제개혁위원회와 이견을 보인 문화관광부가 지난 9일 수정안을 마련해 재심을 요청함으로써 공은 다시 규제개혁위원회로 넘겨졌다.

한국방송광고공사가 독점해 대행하던 지상파 방송의 광고를 KBS와 MBC, EBS는 공영 미디어 렙을, SBS와 지역민방은 민영 미디어 렙을 설립해 담당하도록 하겠다는 것이 이 법률안의 골자다.

당초 미디어 렙의 허가제를 주장했던 문화부는 규제개혁위가 제시한 2년 한시적 허가제에서 3년 한시적 허가제로 한발 물러난 대신 미디어 렙의 골격은 당초 안대로 공.민영 2원체제로 하고 새로 설립되는 민영미디어 렙에 대한 개별 방송사의 출자지분은 명시하지 않은 채 전체의 10%라는 상한선만을 두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수정안 역시 공영과 민영이라는 두 이름으로 한국방송광고공사를 쪼개는 입장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자회사로 설립되는 공영 미디어 렙은 현재의 광고공사의 역할을 축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청료를 챙기는 공영방송이 공영 미디어 렙의 설립으로 광고료 인상의 덕을 함께 보게 됐을 뿐 지난날 독점 폐해로 지적됐던 끼워팔기 등 광고영업의 폐단이 없어질 것 같지 않다.

공영 미디어 렙이라고 해서 방송광고공사 때와 다른 제도적인 특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민영 미디어 렙과 경쟁하면서 방송광고료가 덩달아 오를 공산만 커졌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미디어 렙을 만들자는 건가.

문화부는 한국방송광고공사가 2년간 일정수준의 지분참여를 함으로써 민영 미디어 렙이 광고요금을 멋대로 올리지 못하게 견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펴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광고공사를 통해 민영 미디어 렙을 이끌어 가겠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방송광고료가 제멋대로 인상돼 소비자의 부담이 한없이 늘어나지 않게 하려면 오히려 광고협의회와 민간공익기구 등이 함께 참여하는 가칭 방송광고요금조정위원회를 통해 요금을 책정하도록 법적 근거를 만드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공영방송 총 광고비는 정부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민영방송 총 광고비도 방송그룹 한 곳당 전체의 30%를 넘지 않게 규제한다.

공영방송의 대표격인 일본의 NHK와 영국의 BBC는 아예 광고를 전혀 하지 않는다.

공영방송이 시청료를 그대로 받으면서 광고도 챙기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규제개혁위는 19일께 전체회의를 열어 문화부의 법률안을 재심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방송광고공사법을 대체할 새 법률을 만드는 목적은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염두에 둔 방송발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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