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밴쿠버] ‘맏형’의 아름다운 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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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혁(왼쪽)이 1992년 어머니 이인숙씨와 함께 찍은 사진. 이규혁은 13세였던 91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중앙포토]

레이스를 마친 이규혁(32·서울시청)은 트랙에 드러누워 가쁜 숨을 수십 번이나 몰아쉬었다. 사력을 다했지만 아직 4명이 남아있는 현재 7위. 그의 다섯 번째 올림픽 메달 도전은 이렇게 끝났다. 18일(한국시간)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열린 밴쿠버 겨울올림픽빙속 남자 1000m에서 이규혁은 1분09초92로 9위에 머물렀다.

금메달 기대를 모았던 500m에서 15위에 그친 뒤 1000m에서 마지막 희망을 걸었지만 신은 그에게 ‘올림픽 메달’이라는 선물은 주지 않았다.

기운을 겨우 차린 이규혁은 은메달이 확정된 후배 모태범(21·한국체대)을 찾아가 “정말 잘했다”며 안아줬다. 모태범은 “감사합니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선배의 퇴장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모태범·이상화(21·한국체대) 등 새로운 스타로 떠오른 후배들이 진정으로 그에게 감사를 표했기 때문이다.

“규혁이 형은 언제나 저의 우상이었습니다. 제가 지금 쓰는 주법도 규혁이 형이 가르쳐 주셨어요. 정말 고마운 선배입니다.”

모태범의 얘기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날 경기도 포천 모태범 선수의 집에서 만난 모태범의 어머니 정연화(49)씨는 아들의 은메달에 기뻐하기에 앞서 “샤니 데이비스 자리에 규혁이가 있어야 했는데”라는 말을 먼저 했다. 정씨는 “규혁이가 금메달, 태범이가 은메달을 따길 바랐다”고 했다.

“태범이도 열심히 했지만 규혁이는 더 오랜 기간 더 열심히 했는데…. 태범이가 규혁이를 보면서 컸고, 도움도 많이 받았거든요.”

정씨는 의기소침한 이규혁의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히자 살짝 눈물을 내비치기도 했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규혁이가 있어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팀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규혁이가 지금까지 잘해줬기에 2006 토리노에서 이강석(25·500m 동메달)이, 밴쿠버에서 모태범·이상화가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규혁이 있어 모태범도 있었다=이규혁은 1978년 스피드 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이익환(63)씨와 피겨 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감독 이인숙(53)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빙상 신동’은 13세에 태극마크를 달았고, 스프린터로는 환갑이라는 32세까지 국가대표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웠다. 97년 월드컵 대회 1000m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세계기록을 세웠고, 2001년 1500m 세계기록도 작성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스프린트선수권 3회 우승(2007·2008·2010년) 기록도 세웠다.

대표팀에서 이규혁은 후배들의 코치 역할까지 해왔다. 그가 세계의 벽을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서른이 넘어서도 올림픽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서 후배들은 꿈을 키웠다. 이규혁의 꿈을 후배들이 대신 이룬 것이다. 

◆어머니께 보낸 문자=1000m 경기가 열리기 하루 전인 17일 이규혁이 어머니 이인숙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엄마, 모든 준비가 끝났어. 이번엔 정말 빈틈없이 준비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떨리네. 하지만 엄마가 있고 할머니가 계시고 동생 규현이가 있으니까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할게’라는 내용이었다. 네티즌들은 “당신이 진정한 영웅”이라며 한국 빙속 영웅의 퇴장을 아쉬워했다. 이규혁은 이날 경기를 마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죄송하다”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열심히 탔고 최선을 다했으니 네가 최고다. 너는 이미 세계적인 선수”라고 했다.

김식 기자, 포천=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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