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대담]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석좌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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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새해 벽두부터 세계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미국 나스닥증시는 올해 첫 개장일에 7% 이상 폭락했고,안정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감산 주장으로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좌교수를 만나 올해 세계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의견을 들었다.

프랭클 교수는 세계은행.국제통화기금(IMF)등을 거쳐 클린턴 행정부에서 경제자문위원으로 주요 정책결정에 참여했으며 국제경제학계에서 알아주는 학자다.

그는 최근 둔화 조짐을 보이는 미국경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따. 2%만 성장해도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한국 등 아시아 경제에 대해서는 "낡은 금융시스템 등으로 인해 경기 하강이 예상되지만 높은 저축률과 투자율. 교육열 등 긍정적인 요소들을 고려할 때 제 2의 위가 닥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랭클 교수는 미국 경제가 지난 10년간 호황을 지속해온 것은 탈규제.혁신.세계화 등에 힘입은 것이며, 이런 미국의 장점을 유럽이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착수한 한국의 개혁정책도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미국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미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할 것인가,아니면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질 것인가.

“어느 쪽이라 단정할 순 없지만 미국 경제가 최근 수년간 지나치게 높은 성장을 해 왔던 것을 감안할 때 앞으로 어느 정도의 하락세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러나 성장률이 2%선으로 낮아진다 해도 나로서는 만족할 만 하다고 생각한다. 경기침체를 우려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전문가들이 경기둔화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 아마도 지난 5년간 호황에 너무 익숙해진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신경제,그 중에서도 나스닥 기술주들의 좋은 시절은 끝장났나.

“나스닥시장의 기술주들은 1년전만해도 엄청나게 고평가됐었다.그동안 IT분야에 관심이 쏠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분야가 신경제의 엔진으로 기능하며 많은 가능성을 보여줬다.하지만 그 관심이 2000년에 이르러서는 지나쳤다. 주식시장에서의 IT붐은 1920년대 전기와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와 비교될 정도였다. 미래에 대한 수익전망이 밝다는 이유로 적자기업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특정 기업에 대한 그런 판단은 옳을 수도 있지만 모든 기업,나아가 경제 전체를 그런 식,다시 말해 투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경제가 어떻게 전개될 지 살필 수 있는 주요 지표는 무엇인가.

“경기후퇴 가능성을 언급하는 대통령이나 부통령의 발언이 우선 불안한 암시다. 선거이후 하락하는 소비지수는 일반 가정의 소비가 위축된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이자율 변화도 경기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유가가 다시 한번 뛴다면 세계 최대의 석유수입국인 미국 경제에 좋지 못한 영향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대부분 가정에 불과하다. 미국 경제는 아직은 긍정적인 면을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는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받는다. 3년전 외환위기를 맞았던 동아시아는 잠시의 회복기를 지나 다시 흔들리고 있다.현재의 하강국면을 또다른 위기의 전조로 보는가.

“아시아가 지난 시절 경험했던 두자리수의 성장은 이제 지나간 얘기다. 그동안 아시아의 고성장은 그만큼 경제가 뒤쳐져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본과 기술에서 뒤진 아시아국가들은 자본과 인력에 집중 투자하고, 선진국들의 첨단기술을 습득하면서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다.그러나 선진국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고도성장은 어려워지고 있다.이런 점에서 볼 때 90년대 아시아 경제가 주춤했던 것은 불가피했다.

불행했던 것은 이같은 경기하강이 서서히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갑자기 덮치면서 위기가 증폭됐다는 얘기다.이는 주로 아시아국가들의 낙후된 금융시스템에서 기인한 것이다. 아시아 경제는 아직도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 맞춰져 있다. 과다한 차입금 비중,개인적 관계에 의존하는 은행시스템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시아 경제의 미래에 대해 낙관한다.금융부문 개혁이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계속되고 있다. 아시아에 3년전과 같은 경제위기가 또 올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시아 기적은 신기루가 아니다. 높은 저축률과 투자율,교육열·근면 등이 일궈낸 실적이고,이런 긍정적인 요소들은 지금도 작동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은 오랫동안 일본경제의 회복을 고대해 왔다.가까운 미래에 일본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보나.

“일본은 이미 80년대에 자본 ·기술 ·자본대비 수익률 등에서 서구수준에 도달했다. 90년대 일본경제의 추락은 뒤쳐진 금융시스템과 부동산 거품 등이 붕괴되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게다가 일본정부는 몇가지 거시적인 정책 오류도 범했다. 중요한 시기에 지나치게 통화를 긴축한 것이나 97년 4월 소비세를 올린 것은 대표적인 정책실수다. 하지만 80년대 일본경제의 성공에서는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력에 대한 투자와 제조업 중시는 여전히 평가받는 부분이다. 일본 경제는 현재 잠재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거의 10년간 지속되고 있는 지금 자기조절기능이 작동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렇질 못했다. 일본 경제가 언젠가는 회복될 것으로 보지만 그 시기가 언제쯤일 지는 여전히 말하기 어렵다.

-유럽의 느린 성장도 일본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유럽통합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걸고 있으나 아직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나.

“80년대 몇가지 요인들이 일본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90년대 이후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이끄는 요소들은 탈규제·혁신·세계화다.이런 미국 경제의 장점을 유럽이 배워야 한다.많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하듯 유럽의 노동시장은 좀 더 유연해져야 한다.프랑스가 주간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경제는 일본보다는 좋다.비록 예측이긴 하지만 올해 유럽의 성장률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역전이 일어난다면 유로화 가치는 올라갈 것이고, 커지고 있는 미국의 무역적자폭은 줄어들 것이다. 유로는 99년 출범 전에 일부 경제학자들이 예측했던 것과 같이 달러에 대해 그다지 위협적인 도전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2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감안하면 커다란 실패도 아니다. 유로는 국제화폐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유럽금융시장의 통합과 발전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가 아르헨티나나 터키 등의 경제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벌이는 노력이 효과를 거두리라고 보는가.

“당분간은 위기국면에서 벗어난 것으로 본다.몇가지 시의적적한 정책과 IMF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98, 99년 미국의 이자율 상승이 아르헨티나와 터키의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했을 것으로 본다.그런 면에서 미국 경제가 둔화하면서 올해 금리가 낮아진다면 신흥시장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다자간 무역자유화에 관한 뉴라운드를 출범시키거나 아니면 환경·노동기준 등 새로운 문제에 대해 다자간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다자간 무역자유화 협정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아마 다음 라운드는 우루과이라운드 만큼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투입할 가치는 있다. 환경이나 노동기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서 더 이상 변죽만 울려서는 안되고 본격 논의돼야 한다. 나는 노동기준에 대한 국제적인 합의는 환경보다도 더 어렵다고 본다.

이유는 대부분 나라들이 노동정책을 국가주권과 관련된 문제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는 국경을 넘어서는 문제여서 다자간 해결방식이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세계는 다가오는 10년동안 많은 환경문제에 대해 국제적 합의에 도달할 것 같지는 않다. 환경과 경제적 이익 중 어느 것을 우선할 지 국내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주권을 훼손당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폭넓게 확산돼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노력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전반적인 세계 경제의 하강국면과 아직도 계속되는 중동정세의 불안 등을 감안할 때 올해 유가는 어떨 것으로 보나.

“유가는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중동평화 등 여러가지 변수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오일쇼크가 세계 경제에 매우 위협적이었던 70년대에 비해 오늘날은 다른 형태의 에너지원이 많이 있어 당시보다는 충격이 덜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경제가 요동을 친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가에 의한 것일 수 있다.”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석좌교수>

만난 사람=김정수 전문위원,정리=윤창희 기자

<제프리 프랭클 교수 약력>

▶1952년 샌프란시스코 출생

▶78년 MIT대 박사(경제학 전공)

▶79년 UC버클리대 교수

▶94∼96년세계은행 컨설턴트

▶95년 국제통화기금(IMF)이코노미스트겸 컨설턴트

▶96년 클린턴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 위원

▶99년 브루킹스연구소 초청연구원

▶현재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석좌교수

▶ 주요 저서:‘외환시장 개입 효과 있나’(93)‘금융시장과 통화 정책’(95)‘지역 무역블록’(97)‘무역은 성장을 촉진시키나’(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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