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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식인 지도] 1. 촘스키의 야만사회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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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지난 20세기 역시 문명과 야만이 공존하는 역사법칙을 고수했다.빛의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파괴 기술은 그것을 앞질렀다.

자유와 인권의 신장을 비웃듯 인권 유린이 자행됐고 탐욕을 위한 체제공학과 전쟁이 문명사를 그늘지게 했다.사람과 물자를 위한 교통·통신의 발달은 투기 자금을 실어 나르는 비트의 속도를 따르지 못했다.

그뿐인가.수많은 불치병이 정복됐지만 동시에 언제라도 죽은 히틀러가 복제인간으로 ‘제작’될 수 있는 야누스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20세기 문명사회에 대한 투쟁의 한가운데에 아브람 노엄 촘스키(72)가 있다. 그는 말한다.

“구제금융을 받은 것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 국제 투자가들이다.한국 국민들은 가혹한 구조조정 프로그램으로 고통을 받았고,은행가.투자가의 이익을 보장하는 사회적 비용을 국민이 떠안은 셈이다.”

일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피에르 부르디외도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지식인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지만,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일관되게 그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온 사람이 바로 미국의 사회비평가이자 언어학자인 촘스키(MIT 교수)다.

아담 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에서는 정의 사회를 위한 ‘결과의 공정 분배’가 핵이었으나 신자유주의는 가난한 자로부터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촘스키의 분석이다.

노동의 이동을 막고 자본의 이동은 허용한 결과 해지 펀드의 농락으로 세계적 경제 혼란이 초래되었다고 경고하고,초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자간 투자협정과 같은 음모들이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끊임없이 경계하고 투쟁해야 한다고 촘스키는 주장한다.

사기업은 왜 문제인가? 촘스키의 말을 들어보자.“전체주의·군국주의·제도의 폭력 등도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지만, 사기업이 더 위험한 이유는 돈에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비자는 거부되어도 송금은 거부되지 않는다. 사기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지만,여기에 인권이나 정의, 부의 공정 분배 같은 단어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좋은 사회’를 위한 촘스키의 주장은 언론 문제에서도 독특하다. 그는 사유 언론이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고 광고주는 언론 소유주의 이익을 보장함으로써 폐쇄된 이익의 고리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사례를 보자.1975년 인도네시아 군은 포드 정권의 암묵적 동의 아래 동티모르를 점령하여 무자비한 인종 청소를 자행했지만,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바로 그 언론은 월맹군의 캄보디아 학살이나 십여 년 후에 일어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해서 엄청난 물량의 보도를 해댔다.미국 석유회사의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된 다큐멘터리 ‘대중매체와 여론조작’에서 촘스키는 영국의 더 타임스와 미국의 뉴욕 타임스의 보도 태도를 비교하면서 미국 주류 언론의 이중성을 폭로하여 전세계인의 감명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말대로 거대한 권력기관인 언론이 ‘좋은 사회’를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함은 자명하다.

세계 지식인 사회와 영향력 있는 언론 매체들이 침묵으로 일관할 때, 촘스키는 동티모르의 인권과 독립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했고,그 연장선에서 미국의 약소국에 대한 개입 정책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레이건 정부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구실로 인구 10만도 안되는 그레나다를 침공했을 때, 미국 언론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허울로 도처에서 경찰 역할을 자임했지만,미국은 실은 미국 국민이 아니라 일부 군수 업체의 이익을 위해 참견꾼 역할을 해왔을 뿐이라고 그는 본다.

1960년대에 베트남전 반대 운동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을 때 촘스키는 직접 전장을 돌아 보고 민간인 마을에 대한 미군의 무자비한 폭격을 고발하기도 했다.

노근리 사건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촘스키는 반전의 표시로 납세를 거부하기도 했고, 징집거부 운동을 벌이던 청년들의 데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체포 ·구금되었던 저명한 소설가 노먼 메일러는 촘스키에 대해

“야위고 날카로운 얼굴에 수도사같은 인상을 지녔고,부드럽지만 완벽한 도덕성이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그렇다면 촘스키는 반미주의자인가? 인간의 존엄과 좋은 사회 건설을 위해서라면 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한다.유태 국가의 건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열등국민화함으로써 평화의 길이 더욱 멀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그는 이스라엘 건국을 비판했다.이 때문에 유태인인 그가 반유태주의자란 비난을 자초했지만,그는 모든 ‘주의’와 이중 잣대를 거부한다.

촘스키의 투쟁 전선은 넓기만 하고,길은 아직 멀게만 보인다.20세기를 점철했던 야만의 장면들이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견 분산되고 외로운 울림 같아 보이는 촘스키의 투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는 좋은 사회의 건설‘이다.

각 개인이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사회가 바로 그가 지향하는 사회다.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그에게 무정부주의자란 이름을 걸어 주었지만,막상 자신은 이를 거부한다.

촘스키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건전한 양식’과 더불어 ‘이웃과의 연대’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NGO 회원들의 조직적 저지로 실패하고 만 것이 본보기다.이런 맥락에서 전국 단위 선거보다 생활정치인 지방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그의 촉구는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세기 문명사회에 대한 촘스키의 투쟁은 그 사상적 토대를 멀리 플라톤-데카르트-훔볼트로 이어지는 이성주의와,오웰의 무정부주의에 두고 있으며,듀이와 로크의 자유주의에도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자신은 러셀을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비판자들은 촘스키의 투쟁이 개인주의적이고 고립되어 있는 고고한 울림에 불과하다며 한계점을 지적하지만,정작 그는 ‘참여’와 ‘이웃과의 연대’를 강조한다.

장영준<중앙대 교수 ·영문학>

촘스키는 누구…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생

▶49년 펜실베이니아대 졸업

▶51~55년 하버드대 특별연구원

▶55년 MIT 전자공학연구소 연구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언어이론의 논리구조' 로 박사학위 받음

▶57년~현재 MIT 교수

관련 저작들은…

<번역 저서>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한울.96년)

▶507년, 정복은 계속된다(이후.2000년)

<관련서>

▶촘스키,끝없는 도전(그린비.99년)

▶촘스키(시공사.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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