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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새해특집] 한국축구 새 선장 영입 새 출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9면

이제는 월드컵이다.

축구공 하나에 60억 세계인이 하나가 되는 '꿈의 구연(球宴)' 2002 월드컵이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지역 예선은 벌써 지구촌을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궈놓고 있다.

사상 최초로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하는 2002 월드컵의 성공 여부는 자동 출전권을 가진 두 나라 대표팀 성적에 좌우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갖는다.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 당시 공동 개최국인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상황은 극명하게 갈렸다.

4강에 오른 네덜란드는 대회 마지막까지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 반면 예선 탈락한 벨기에는 썰렁한 파장을 맞았다.

만약 일본이 16강 이상 성적을 내고 한국은 예선 탈락한다면….

지난해 대표팀의 부진은 이같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정부까지 나서 '월드컵 필승대책위원회' 를 구성하고 대한축구협회가 거액을 들여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다.

난파 위기에 빠진 '한국호' 의 키를 잡은 거스 히딩크(54)는 네덜란드가 낳은 명감독이다.

히딩크는 한국 축구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히딩크 감독에게 거는 기대는 월드컵 성적뿐이 아니다. 한국 축구의 체질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18일 정식 계약을 한 히딩크 감독은 다음날 도쿄로 건너가 극히 절제된 언행으로 선수단을 사로잡는 거장의 위엄을 보여줬다.

그는 관중석에서 한.일전을 지켜보며 내심 '해볼 만하다' 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10명이 싸워 일본에 밀리면서도 체력과 정신력으로 버텨내는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신이 체득한 선진 축구기술과 훈련 방식을 이식할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영어.독일어.스페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하며 늘 축구 교본과 외국어 회화책을 끼고 다닐 정도로 학구적이다.

또 자율과 인화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계약 조인식부터 한.일전까지 사흘간 히딩크와 동행한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그를 매우 합리적이고, 경험이 풍부하며, 말을 아끼지만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다.

히딩크는 "대표팀의 붉은색 유니폼이 너무 어둡고 상대에게 자극을 주는 색감이어서 바꿀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낡은 전통에서 벗어나 밝은 분위기로 새출발하자는 의도로 읽힌다.

오는 10일 울산에서 훈련을 시작하는 대표팀은 칼스버그컵, 두바이 4개국 대회를 거쳐 5월 말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한다.

이때쯤 '히딩크 축구' 의 밑그림이 나타날 것이다. 히딩크는 "올해 말이면 팀이 본 궤도에 오를 것" 이라며 조심스럽게 자신감을 보였다.

새해 한국 축구대표팀은 벽안(碧眼)의 지도자 아래 산뜻한 유니폼을 입고, 세련된 축구를 향해 달려간다.

축구인들이 한마음으로 지원하고 국민의 성원이 모인다면 월드컵 16강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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