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이윤림 '슬픈 당나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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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언젠가 오래 전에

나비의 날개를 가졌었던 것만 같은,

구름 위에 앉아 하늘을 떠다녔었던 것만 같은

난데없는 이 기억은 어디서 온 것일까□

몸을 스쳐가는 어떤 그림자

슬픈 당나귀

그러나 당나귀는 슬퍼도

짐을 지고 잘 걷는다

두 귀가 크고 눈망울이 선량한

아름다운 몸

- 이윤림(1958~2000) '슬픈 당나귀' '

이윤림은 당나귀처럼 눈망울이 선량했었는데, 몸쓸 병으로 오랜 투병 끝에 새 해를 보지 못하고 지난달 우리 곁을 떠났다.

죽음의 슬픈 그림자를 안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당나귀의 나비같은 날개와 구름같은 비상(飛翔)을 꿈꾸는 밝은 얼굴이었다.

마지막 여행을 승주 선암사로 다녀와 승선교(昇仙橋)위에 서 찍은 사진을 자랑하며 선녀처럼 곱게 하늘로 날아간 시인의 시가 저무는 한 해에 새롭다.

간 사람은 가고 잊을 것은 잊고 새해를 맞아야겠다. 새해에는 7면으로 옮겨 김용택 시인이 연재를 이어가게 된다. 그동안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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