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발언대] 증권 집단소송제 검토후 도입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최근 정치권이 증권투자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증권집단소송제' 를 의원입법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집단소송은 피해자가 다수고 피해총액이 막대하지만 각자의 피해가 소액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소송을 하기 어려운 경우에 피해자 집단의 대표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판결의 효력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 전부에게 미치게 하는 제도다.

물론 현재의 우리 민사소송제도가 소비자 분쟁이나 환경오염 분쟁과 같은 현대적 분쟁의 해결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법절차보다 집단의 위력이나 물리적 힘에 의존, '사실적 해결' 에 의존하려는 경향마저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도 집단분쟁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1990년 12월부터 오랜 기간 집단소송제의 도입을 검토해 왔다.

그러나 증권에 대한 집단소송제의 도입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집단소송제는 민사소송법의 기본원칙인 '기판력(旣判力.법원의 판단이 이후의 소송에 대해서도 소송당사자를 구속하는 효력)주의' 의 근간을 파괴하고 원고와 피고 사이의 당사자 대등원칙에도 저촉된다.

소송절차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자에게도 판결의 효력이 미치게 되기 때문에 소송참여자에게만 판결의 효력이 미치는 기판력과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집단소송제는 3권분립주의의 원칙을 위배한다.

집단소송제는 소송제기.원고자격 등에 대해 법원의 인.허가권을 인정하는 '사법적극주의' 를 채택하고 있다.

개별적 피해의 사후구제나 분쟁해결만을 본래의 기능으로 하고 있는 법원이 피해와 분쟁을 예방하기 위한 일반적인 정책과정에 간여할 경우 결국은 입법과 행정까지 감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현실적으로도 소송전문 브로커나 변호사에 의해 집단소송이 남용될 가능성이 많고 경쟁회사 등에 의한 악의적 소송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소당한 회사는 대외신뢰도의 추락 등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고, 회사가 도산하는 경우에는 보유주식도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승소하더라도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없다.

특히 증권투자는 투자자의 투자행태와 투자의사 결정의 다양성으로 인해 손해액 산정이 어렵고 불법행위와 손해발생액에 대한 인과관계의 입증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재판이 오래 걸리며 그만큼 소송비용도 증가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현재 최악의 경제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증권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문제는 그 시기.허용범위.방법.절차, 개별 기업의 수용능력, 기타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집단소송제를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인 미국도 법원이 원고자격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피해자수가 공동소송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할 만큼 많은 경우에 국한해 허용하고 있으며, 독일.프랑스는 공익적 단체에 한해 '단체소송' 만을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집단소송제는 물론 단체소송제조차 시행하지 않는다.

더욱이 집단소송제도는 증권뿐 아니라 제조물 책임분쟁.환경분쟁 등 다수의 동일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는 모두 관련이 있는 문제인 만큼 증권집단소송제만을 차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법체계상 맞지 않다.

요컨대 집단소송제 도입은 민사소송법 체제의 정비 차원에서 다른 법령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안문택 <경기대 대학원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