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장례문화 바꾸자" 한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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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종교는 아무도 모르는 죽음의 세계를 설명해준다. 그래서 죽음의 의식, 즉 장례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불교.개신교.천주교.유교 등 국내 주요종교 관계자들이 14일 경북 영천 만불사에 모여 장례의 형식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결론은 '화장' 으로 모아졌다.

'장례문화 개선운동' 이란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발표자들은 교리에 따라 장례의 방식이 각각 다름에도 불구하고 "매장에 따른 사회적.생태적 문제가 심각하기에 화장이 더 바람직하다" 며 "종교단체들이 화장을 장려하는 운동을 벌여야한다" 는데 뜻을 같이 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구분 없이 기독교에서…의 장례법은 '매장' 이다. 십자가에 매달려 숨진 예수는 매장됐고, 다시 사흘만에 부활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독교도들은 이에 따라 매장을 택해왔고, 부활을 믿어왔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신부와 목사는 "더이상 매장을 고집해선 안된다" 고 강조했다.

나기정 신부는 "우리는 그동안 금수강산을 묘지강산으로 열심히 바꾸어왔다. 그러나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다" 며 매장에 따른 국토훼손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는 이어 "가톨릭은 화장을 허용하면서도 그동안 적극적으로 권장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근 화장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납골당 설치를 권장하는 운동이 시작됐다" 며 "종교지도자가 나서 화장이 교리나 교회법상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을 신자들에게 적극 교육.권장해야한다" 고 주장했다.

개신교의 정다운 목사는 "주검은 화장이든 수장이든 매장이든 산 자의 공간과 환경을 망치게해선 안된다. 그 누구도 죽은 자가 넓은 땅을 차지할 권한은 없다" 고 역설했다.

그는 "야곱과 요셉은 애굽(이집트)의 장례방식에 따라 미이라가 됐으며,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은 화장됐다" 는 성서의 기록을 인용, "장례 방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해가야하며, 우리 현실에선 화장이 바람직하다" 고 주장했다.

'매장' 을 고수하고 있는 유교를 대표하는 발표자로 나온 성균관 이승관 전의는 "매장의 전통은 우리 전통의 장례법이며, 조상신이 후손과 함께 영원히 살고 있다는 조상숭배는 유교사상의 핵심" 이라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종교적 경지의 전통적 장례방식(매장)을 쉽게 바꿀 수는 없지만, 어떤 제도든 현실에 맞추어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며 유림도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보존에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있다" 며 화장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한편 화장을 전통적 장례의식으로 지켜온 불교계를 대표한 보광 스님은 "최근 장묘관계법 개정으로 사찰들에 납골탑.납골당이 많이 생기면서 일부 신도들이 부처님의 사리탑과 같은 화려한 묘탑을 만드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고 지적한 뒤 "불교의 기본정신을 훼손하는 묘탑의 난립에 대해 종단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고 주장했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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