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미군 유해 발굴해 놨으니 가져가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52호 01면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왼쪽)이 6일 평양공항에 도착, 환영 나온 북측 인사와 공항을 나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친서를 전달하고 6자회담 재개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왕 부장은 화폐개혁 이후 북한의 혼란상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평양 로이터=연합뉴스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움직임이 분주하다. 중국의 왕자루이(王家瑞)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6일 오후 평양에 도착했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북특사인 린 파스코 유엔 사무국 정무 담당 사무차장이 9∼12일 평양 방문을 앞두고 이날 서울로 왔다. 통일부는 8일 북측과 개성에서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를 위한 남북 실무회담을 개최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김정일 금고까지 말라가자 돈 될 곳마다 손 내밀어

이 같은 흐름에는 북한 측 동인이 크다. 북한은 연례 행사이긴 하나 왕자루이 중국 당 연락부장을 초청했고, 그동안 거부해 온 유엔 사무총장의 특사 방북도 받아들였다. 우리 당국이 금강산 관광 회담 개최 조건으로 ‘신변 안전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책임 있는 북한 당국자를 실무회담에 넣어야 한다’고 하자 명단을 수정·통보했다. 북측은 회담 대표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조평통 서기국 책임부원,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과장을 포함시켰다. 북한은 6일 지난해 말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무단 입북한 미국 국적의 로버트 박씨를 43일 만에 베이징 공항을 통해 석방했다.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북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하며 6자회담을 거부해 온 입장에서 선회하는 전주라는 분석도 있지만 경제적 지원을 우선 얻어 내기 위한 상황 모면용 제스처란 시각도 상당하다.

6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오른쪽)을 예방한 린 파스코 유엔 사무차장. 연합뉴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9호실 금고는 물론 국가 전체의 국고가 바닥나는 중”이라며 “외부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이 상당 부분 차단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정권의 붕괴가 임박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북한의 상황이 아주 심각하다는 것이다. 그는 “수백만 아사자가 발생한 1990년대 중반의 위기와도 질적으로 다른 양상”이라며 “북한 주민들이 시장 체제에 맛을 들였고 개방사회를 직간접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당국자는 “최근 국정원이 ‘북한의 화폐개혁과 시장 통제 이후 인플레이션, 생필품 부족 등으로 사회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권력층의 이반과 쿠데타 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했를 했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북한이 손을 내민 분야는 모두 현금이 되는 분야다. 지난달 27일 북한은 서해 함포 사격 도발을 하면서도 유엔사를 통해 미측에 미군 유해 발굴사업 재개를 제안했다. 북측은 “우리가 다른 공사를 하면서 미군 유해를 발굴해 놨다. 수고하지 말고 와서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또 당시 지형을 알고 있는 노인들이 사망하고 있는데 그전에 작업을 마쳐야 하지 않겠나”며 ‘호소’했다고 한다. 미측은 아직 답을 주지 않고 있다. 미측은 96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 내 유해 공동 발굴작업으로 229구의 시신을 발굴하고 2800만 달러를 줬다. 당국자는 “미측이 비용 지불방식 변경 등의 문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이 현금 압박에 시달린 것은 지난해 핵실험 후 유엔 제재가 발동하면서다. 수차례 차단된 무기 수출은 북한의 대표적인 현금원이다. 북한에서 출항하는 선박에서 발견된 무기는 무조건 압수되기 때문에 수주국의 주문량이 급감하고 있다는 게 정부 분석이다.

최근 김정일 위원장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의 김동운 실장이 해임되고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물어 박남기 당 계획경제부장도 해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정부 당국자는 “해임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지난 연말 유럽연합(EU) 27개국이 북한의 핵심 인사를 대상으로 취한 출입국 금지, 자산 동결, 역내 송금 금지 등 조치가 북한 권력층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