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비판 자제하던 정운찬 “공격 앞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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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운찬 국무총리는 4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정치집단의 보스’라고 지칭했다.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방어와 설득’의 어법을 구사했던 정 총리는 이날 공세적인 발언으로 일관했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정 총리까지 박 전 대표를 강도높게 공격하고 나서자 정치권에서는 ‘의도된 포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초 정 총리는 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가 왔다. 오히려 직접 만나 설득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직접 만나 제 생각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충청언론인 토론에서도 박 전 대표와의 만남을 희망하면서 “제 마음속에는 (설득할) 복안을 갖고 있다”고 했다.

최근 헌정회 주최 토론회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동의를 구하려면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해야지 저한테 할 일이 아니다”라며 일찌감치 제안을 거부해 버렸다. 그러자 정 총리가 선택한 방법이 여덟 차례 충청권 방문과 박 전 대표를 제외한 정치인들과의 면담이다. 특히 1월 18일부터 시·도별로 한나라당 의원들과 차례로 만나는 등 일종의 우회로를 선택했다. 그런 그가 국회에서 박 전 대표를 향해 포문을 연 것은 전략의 또 다른 변화로 읽힌다.

여권에선 “정 대표와 정 총리가 일제히 박 전 대표를 공격한 것은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란 관측이 나온다. “친박계에 대한 설득 전략이 통하지 않고, 충청권의 기류도 크게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가 열린 만큼 정부와 여당 주류가 보다 공격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정 총리의 측근은 “정 총리의 발언 내용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며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대권 경쟁 구도에서 1위를 수성해야 할 위치인 박 전 대표에게 후순위 주자인 정 총리나 정 대표가 공세를 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세종시 문제가 ‘신뢰냐, 백년대계냐’라는 지루한 가치논쟁에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대권 경쟁이 조기에 점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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