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계 지협성등 질타한 재일 윤건차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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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최근 일본에서 현해탄을 날아온 조그만 돌맹이 하나가 한국 학계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겉보기엔 여파가 미미한 듯했지만, 막상 그 돌맹이 때문에 속앓이 하는 사람은 적잖다.

그 파문의 진원지는 일본의 가와가나(神奈川)대 윤건차(54.사진)교수다. 윤교수는 1980~90년대 한국 지식인들의 이론과 사상을 최근에 낸 3백50여 쪽의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당대)이란 책에 정리했다.

특히 당대 지식인 65명의 사상적 경향을 15개의 집단으로 분류한 '지식인지도' (중앙일보 10월27일자 46면 참조)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윤씨의 이런 시도가 한국 학계를 자극했다. 내용(특히 도표)에 거론된 사람은 그들대로, 그 속에 들지 못한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불만을 표시하고 나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는 공(功)에만 익숙하지 과(過)를 지적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한국학계를 질타하는, 걸끄러운 대목들이 곳곳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분단체제론' 의 백낙청(진보적 민족주의)에 대한 평가를 보자. 윤교수는 민주변혁과 통일을 일체화하려는 백씨의 실천적 의지를 높히 평가하면서도 "남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특수한 관계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북한 민중의 연대가능성과 분단체제 극복운동에 대해서도 명확한 서술을 결여하고 있다" 고 비판했다.

김지하(복고적 민족주의)나 한상진(개량적 자유주의) 등에 대해서도 싸늘한 눈초리를 보냈다. 윤교수는 책 출간이후 처음으로 지난주 한국을 찾았다.

서울대에서 열린 교육관련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윤교수는 "한국 사람이 무서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공개적 논쟁이 아닌, 뒷말로 공격하는 우리 학계의 잘못된 풍토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윤교수는 "지식인지도를 만들면서 수십 명의 한국 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으나 겹치는 답을 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며 "그만큼 유형화에 정답은 없다" 고 말했다. 자의적 구분이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문제될 게 없다는 식이다. 더불어 분과(分科) 학문에 매몰된 한국 학계의 지협성과 무목적성도 비판했다.

윤교수는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교토대를 졸업하고 도쿄(東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일교포로는 최초로 일본의 종합대학 교수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사상사와 일본 근대사상사가 전공. 그는 "한때 정체성 위기로 인해 반민족적 허무주의에 빠진 적이 있다" 며 "탈식민지의 고민을 안고 있는 찢겨진 산하는 내 학문의 영원한 화두"라고 말했다.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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