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대선과 한반도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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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막판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짙어졌다.

'40년만의 혈전'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미 역사상 초유의 재검표 사태를 초래할 만큼 이번 선거는 예측불허의 대접전이었다.

미 유권자들로서는 그만큼 '어려운 선택'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사상 최장기 호황이 말해주는 경제적 번영의 지속과 민주당 8년 집권에 따른 변화의 욕구 사이에서 미 국민은 끝까지 고심했지만 '행운의 여신' 은 결국 부시쪽으로 기우는 모양이다.

제43대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당선 유력한 부시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대외정책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우리는 앞으로 부시 행정부가 지향할 외교정책의 방향과 그것이 한반도와 주변정세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부시 후보는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전세계에 걸쳐 클린턴 행정부가 유지해온 적극적 개입정책에 대한 재고 의사를 표명해 왔다.

특히 한반도 문제에 있어 채찍보다 당근에 무게를 두는 대북(對北) 포용정책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행정부 안팎의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국의 국가 의사결정구조를 고려할 때 부시 행정부가 출범한다고 해서 대(對)한반도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교과서인 '페리 보고서' 의 골격 자체를 허물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클린턴 정부의 유화적 대북 접근 방식에는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는 대북접근의 속도조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시의 외교안보 분야 주요 참모진에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 폴 울포위츠 전 국방차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방차관보 등 군관련 보수성향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는 점도 그런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제2의 경제위기론' 이 눈앞의 현실로 닥치면서 대북접근의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국내에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부시의 당선 가능성이 갖는 의미를 잘 헤아려 대북정책과 대미(對美)외

교를 지혜롭게 끌고가는 예지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클린턴 행정부와 손발을 맞춰온 우리 정부 입장에서 낯선 파트너의 등장은 다소 당혹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다.

전통적 한.미 동반자 관계에 입각해 '혼선기(混線期)' 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정부에 촉구한다.

클린턴 행정부 아래서는 그냥 지나쳤던 문제도 부시 행정부 아래서는 문제로 불거질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부시가 당선된다고 미국의 대외 경제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겠지만 통상정책에서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자유주의적 입장에 서왔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마찰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대책도 아울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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