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받은 헌책 팔아 아이티에 식수 지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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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에 쌓여 책장에서 잠자는 헌책만 기부해도 아이티와 같은 빈민국에 깨끗한 물을 보내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게’ 초청으로 23일 한국을 방문한 영국 옥스팜의 수지 알더(Suzy Alder·37·사진) ‘북 프로젝트’ 매니저는 “헌책 기부만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빈민구호단체인 옥스팜(Oxfam)은 1942년 설립된 비정부기구(NGO)다. 아이티를 비롯한 전세계 68개 국가에 지부를 두고 있다. 옥스팜은 영국에서만 750개의 점포가 있다. 이곳에서는 헌옷을 비롯한 각종 중고상품을 판매한다. 알더는 영국 전역에 흩어져 있는 132개의 옥스팜 중고서점을 관리하고 있다. 옥스팜 중고서점은 유럽을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중고서점이다.

1983년 시작한 옥스팜 중고서점은 한 달에 100만 권의 책을 판매하고 있다. 한해 1200만 권이 옥스팜을 통해 판매된다. 알더는 “옥스팜의 일 년 예산 5000억원 중에서 400억원은 헌책을 판매한 수익에서 거둬들인다”고 말했다. 옥스팜 중고서점에서 판매되는 책의 90%는 개인이 기부한 것이다. 나머지 10%는 출판사나 기업에서 기부한다. 알더는 “기증받은 책들은 새책의 삼분의 일 정도의 가격으로 판매한다”며 “온라인 서점에서도 5만 권이 등록돼 있다”고 말했다. 기부받은 책을 전국 지점에 효과적으로 배분하는 것과 헌책의 질을 관리하는 것이 옥스팜의 비법이다.

옥스팜 중고서점의 성공 비결은 기부자들에게 ‘기부만큼 쉬운 건 없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에서 출발한다. 알더는 “1파운드를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보다 책 2권을 매장에 가져오도록 기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영국의 기성 작가 38명에게 단편소설을 기부받아 책을 만들어 판매하는 옥스팜 이야기(ox-tal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구를 만드는 ‘물, 불, 바람, 땅’의 4가지 주제를 주고 그것에 맞는 단편을 기부받아 책을 만든 것이다. 그는 “중고서적을 재활용하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그린코드와 기부를 연계해 기부를 늘이고 있다”며 “한국도 문맹률이 낮아 헌책 기부를 활성화하기에 좋은 조건이다”고 말했다.

올해 옥스팜은 지진으로 수만 명이 사망한 아이티 지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번 지진으로 구호물품을 관리하던 옥스팜 직원 2명을 잃기도 했다. 알더는 “중고서적 한 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천 권의 책은 아이티에 생수를 제공하고 지진으로 끊어진 수도관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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