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 지식인의 역할 다룬 '모든 견고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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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세인양 우리 앞에 다가온 정보화.디지털의 신대륙, 문제의 이 사이버 공간을 다룬 신간 두 개는 대조적이다.

한 권은 이 신대륙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일 수 있다고 낙관론을 편다. 국내 여성 문학평론가의 이 인문적 성찰과 달리 정보화에 피로도를 먼저 느낀 미국의 다른 저자는 질겁을 한다.

그는 이미 만연한 데이터 스모그를 헤쳐나가기 위해 '정보 다이어트' 를 제안한다.

*** [신간] '모든 견고한 것들은 하이퍼 텍스트 속으로 사라진다'

저자인 문학평론가 최혜실씨는 인문학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세상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그는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다가오는 하이퍼텍스트의 시대,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가 모호해지는 세상에서 인간의 새로운 위상과 역할을 찾는 것이 인문학자의 임무라는 당위성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하이퍼텍스트의 세계에 대한 단정적인 평가를 배제하고 있다. '디지털 문명이 유토피아를 초래할 것이란 낙관론도, 보이지 않는 지배자인 '빅브라더' 의 출현이라는 비관론도 경계한다.

근거없는 낙관과 괜한 비관을 동시에 유보한 상태에서 다만 문명의 주체는 인간이기에 미래의 가능성 역시 인간의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 과 '좋아질 수 있는 미래의 모습' 을 찾고자한다.

예컨대 저자는 '세계 민주주의' 와 '사이버 제국주의' 라는 두가지 가능성을 비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평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 세상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 광장' 과 같다.

반면 기술적 한계는 '사이버 제국주의' 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소프트웨어를 독점한 현실은 세계적 차원의 사이버 권력이 탄생할 수 있음을 시사해준다.

이런 '양자택일의 '갈림길에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사이버 시대의 새로운 지식인상이다. 디지털(digital)과 지식인(literati)의 합성어인 디제라티(digerati)들이 미래의 명암을 좌우할 존재의 이름이다.

사생활보호나 저작권문제, 저질 대화방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정보독점을 예방하는 정보화 시대의 양심적 전문가들이 그들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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