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돋보기] "어린이 무단횡단 교통사고 절반은 부모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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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부모는 어린 자녀의 교통사고에 대해 감독 소홀 등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왔다.

특히 법원은 통상의 교통사고보다 부모의 책임 비율을 높게 산정하는 등 어린이에 대한 보호자의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어린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0만명당 4.1명꼴로 일본(1.3명)이나 영국(1.5명)에 비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전우진 판사는 도로를 무단 횡단하다 차에 치여 숨진 윤모(당시 4세)군의 부모가 S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는 부모의 책임 50%를 제외한 9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10일 밝혔다.

전 판사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이를 야간에 차량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보호자 없이 혼자 놀게 한 부모에게도 과실이 있다"며 부모의 책임을 50%로 인정한 근거를 설명했다.

윤군은 지난해 10월 11일 오후 11시쯤 부모와 함께 경기도 평택시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윤군은 식사 도중에 혼자 밖으로 나간 뒤 편도 2차로 길가에서 놀다 승합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

법원은 그동안 보행자의 무단횡단으로 발생한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을 재판할 때 도로 폭, 사고발생 시간대, 보행자의 음주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피해자의 과실 비율을 20~40% 수준에서 인정해 왔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피해자의 책임 비율을 비교적 높게 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1단독 한소영 판사도 유아보호용 장구나 안전띠 없이 승용차에 태워졌다가 사고를 당해 사망한 이모(당시 2세)양의 부모가 H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H사는 유아보호용 장구를 장착하지 않은 부모의 과실 15%를 제외한 1억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01년 11월 전남 구례읍 터미널 앞에서 가족과 함께 승용차에 태워졌던 이양은 반대 차로에서 달려온 화물차와 충돌하는 바람에 머리를 심하게 다쳤다.

이양은 사고 당시 뒷좌석에 앉은 할머니의 무릎 위에 안겨 있었다.

한 판사는 "화물차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하다 낸 사고에 대해 보험사가 배상해야 하지만 부모도 아기를 태우면서 유아보호용 장구나 안전띠를 매게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 역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 본인 과실을 5~10% 인정해 온 그동안의 판례에 비해 부모의 책임을 더 강조한 것이다.

이준 변호사는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경우 부모의 감독 소홀을 무겁게 묻는 게 법원의 판결 추세"라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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