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 “미국도 정착까지 100년 … 서두르는 건 포퓰리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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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는 올해 고3 학생이 치르는 2011학년도 입시에서 전체 모집 정원의 절반을 입학사정관제로 뽑는다. 지난해 23.5%(886명)에서 55.6%(2320명)로 확대한 것이다. 지방의 한 대학은 지난해 ‘0’명이던 사정관 전형 선발인원을 올해는 500명대로 늘렸다.

이처럼 입학사정관 전형이 대입의 이슈가 되고 있다. 올해는 전국 200개 4년제 대학이 전체 입학정원(37만여 명) 열 명 중 한 명을 사정관제로 뽑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우수 운영 대학에 예산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사정관제 도입 경쟁에 불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는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지난해 9월 설문 조사(학부모 418명)에 따르면 사정관제 실시에 부정적인 학부모의 31.8%는 “자의적인 평가가 우려된다”며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고2 자녀를 둔 임모(46)씨는 “대학들은 잠재력이나 재능, 발전 가능성 같은 추상적인 기준만 말한다”며 “성적이 우수한 아이는 떨어지고, 뒤처지는 아이가 붙는다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불안은 사교육 ‘풍선 효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교육개발원 조사에서 학부모 열 명 중 일곱은 자녀가 사정관제 전형을 준비하면 사교육 기관을 활용하겠다고 했다. 한 고교진학담당교사는 “대학의 추진 속도가 빨라 고교의 준비가 부족하다 보니 그 틈새를 사교육이 파고들고 있다”며 “대학과 고교 간 협력체제 구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객관성·전문성 갖췄나=2006, 2007학년도에 대학들은 통합논술을 도입했다. 그러나 교수 한 명이 수백 명 이상을 채점해 공정성 논란이 거셌다. 결국 대부분의 대학은 논술시험을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사정관 전형도 비슷한 길을 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선 전문성이 문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0학년도 사정관 전형을 실시한 47개 대학의 전임 사정관 344명 중 24%는 지난해 8월 이후 채용됐다. 네 명 중 한 명이 입시 전형 한 달 전에 ‘급채용’된 것이다. 344명 중 정규직은 73명(21.2%)에 불과했다. 변수연 한동대 입학사정관은 “2010학년도 입시에서 500명의 서류를 보고 면접도 100명을 하느라 파김치가 됐었다”고 토로했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미국에서도 정착되는 데 100년이 걸린 제도를 정부가 조급히 추진하는 것은 일종의 ‘교육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라고 지적했다. 가톨릭대 성기선(교육학) 교수는 “속도전에 집착하다 입시 비리라도 터지면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탁·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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