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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의 현장] ‘눈 가리고 아웅’ 펀드 판매사 이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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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래에셋의 인사이트펀드에 2년여 전 1억원을 넣은 신모씨는 이 펀드를 생각하면 뿔이 난다. 투자 원금이 7200만원으로 줄어서만은 아니다. 연 3.4%(1억원당 340만원)나 되는 펀드 보수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이 중 펀드를 굴려주는 운용사가 가져가는 1.5%(150만원)에 대해선 큰 불만이 없다. 그러나 펀드 판매사 몫인 1.8%(180만원)는 이해할 수가 없다. 펀드 잔고 우편물 외에 판매사로부터 달리 서비스를 받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신씨는 “어차피 길게 보고 투자한 만큼 기다릴 생각”이라면서도 “이렇게 높은 수수료를 떼어가는데 펀드 수익률이 변변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런 신씨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잇따라 들려왔다. 금융감독 당국이 지난달 신규 펀드의 판매 보수를 연 1.0% 이내로 제한한 데 이어 25일부터는 환매수수료 부담 없이 펀드 판매회사를 바꿀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한 게 그것이다. 신씨는 26일 펀드를 구입했던 미래에셋증권 지점을 방문했다. 인사이트펀드와 함께 인디펜던스펀드(판매 보수 1.7%)도 보수가 낮은 다른 판매사로 옮길 요량이었다. 그런데 상담 직원에게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펀드 판매사 이동의 혜택은 판매 수수료에만 해당하는 것이고 판매 보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다시 말해 신씨가 불만이었던 판매보수는 금융회사를 옮겨봐야 모두 같으니 이동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수수료는 뭐고 보수는 뭔가. 같은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상담 직원은 “수수료는 펀드를 처음 구입할 때 내는 돈이고, 보수는 펀드 구입 후 계속 내는 돈”이라고 답했다. 신씨는 그제야 펀드는 수수료에 따라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한 번에 많이 내느냐, 쪼개서 계속 내느냐의 차이일 뿐이란 점에서 뭔가에 속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더구나 국내 펀드시장에선 신씨가 가입한 것과 같은 판매 보수형 펀드가 수수료형 펀드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고는 불쾌함이 더했다.

정부도 펀드 소비자들의 불만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친서민정책의 일환으로 벌써 2년째 펀드 수수료와 보수를 낮추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성과는 거의 없었다.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들이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특히 펀드 시장의 절대 강자인 미래에셋 등 일부 과점적 지배자들이 그랬다. 이들은 보수를 많이 받는 대신 자산관리 컨설팅 등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얘기해 왔다. 그러나 서비스가 달라졌다는 평가는 좀처럼 듣기 힘들다.

금융위원회 권혁세 부위원장은 27일 “기존의 펀드 가입자에 대해서도 판매 보수를 낮춰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융위의 실무 관계자는 “법규로 강제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며 “업계의 협조를 구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털어놨다.

변화를 위해선 펀드 투자자들이 깐깐해지는 수밖에 없다. 유행 따라 펀드에 덥석 가입하지 말고, 수수료와 보수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져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행히 선택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판매사를 거치지 않는 운용사 직판 펀드나 거래소에서 직접 거래되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그런 예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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