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신앙] '천주가사 자료집' 펴낸 김영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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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다행하다 우리들은 예수성탄 참례하야/천신목동 무리지어 함께 찬양 하여보세/말구유와 빈 초막은 성탄하신 궁궐이며/폭풍한설 오날 밤은 성탄하신 경절이며… "

1백여년전 천주교 신자들이 성탄절에 불렀던 천주가사(天主歌辭)의 한 구절이다.

가사는 조선시대에 불렀던 4.4조 노래며, 천주가사는 조선조말 천주교가 전래되던 시절 대부분 문맹이었던 민중들이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신앙심을 다지기위해 불렀던 노래다.

온갖 박해 속에서 성장해온 초기 천주교회의 역사와 민중들의 삶이 담겨있는 노래, 그러나 지금까지 잊혀졌던 노래 3백여 곡을 하나씩 주워모은 책이 '천주가사 자료집(상)' (가톨릭대학교 출판부)이다.

책을 펴낸 김영수(44.사진)씨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자 늦깍이 국문학자다. 가톨릭 신앙과 국문학에 대한 열정이 없이는 해내기 힘든 지루한 작업을 마친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중얼거리던 노랫가락의 기억을 이제서야 되찾았다" 고 말했다.

"소년 시절 홍제동 성당에 다니면서 할머니들이 중얼거리던 노래를 들었는데, 나중에 대학(경희대 국문과)에 진학해 그것이 '천주가사' 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 사라진 노래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야 첫 책을 내놓게 됐네요. "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 성당을 놀이터로 삼았던 김씨는 대학시절 천주가사의 복원을 꿈꾸었으나 졸업후 교사가 되면서 10여년 잊고 살아야했다.

그러다 5년전 "사십줄에 들어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기위해" 경희대 박사과정에 뒤늦게 진학, 천주가사 복원에 뛰어들었다.

천주가사의 흔적이 워낙 희미했기에 개인소장가를 수소문해 찾아다니고 천주교 관련 단체의 자료실을 뒤지는 작업을 5년이나 반복해야 했다.

"남들이 안하는 일을 하니까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고 도와 주었습니다. 덕분에 꽤 찾았다고 하지만 아직 묻혀있는 가사가 많을 겁니다. 더 찾아내 하권을 내야죠. "

김씨는 최근 '필사본 심청전연구' 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느릿한 말투의 늦깍이 국문학자는 굵은 목소리로 "이제부터 시작" 이라고 말한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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