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외교정책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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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21일 폐막된 제3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영국.독일.스페인 등 유럽국들이 잇따라 북한과의 수교의사를 공식 천명함으로써 북한은 이제 '은둔에서 햇볕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유럽국들의 이같은 수교제의는 지난달 21일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이 프랑스.영국.독일 등 미수교(未修交) EU 9개국에 서신을 보낸 데 대한 응답으로 북한은 현재 이들 나라 외에도 캐나다.뉴질랜드 등과 관계 정상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미관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 이래 북한이 '철천지 원수' 로 여겼던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의 고위 관리로는 처음으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23일 평양을 방문,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회담했다.

북한은 이에 앞서 실질적 2인자인 조명록(趙明祿)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을 특사 자격으로 미국에 보냈다.

외교안보연구원 유석렬(柳錫烈)교수는 "북한이 올들어 대미(對美)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전방위 외교를 펼치고 있다" 면서 "이는 북한이 체제보장을 위한 대미 외교만 갖고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올들어 북한이 보인 외교 행보는 크게 세가지로 파악됐다.

첫째는 남한 및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 남한과는 지난 6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또 미국과는 관계 정상화를 위해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을 적극 추진 중이다.

둘째는 과거 동맹국들과의 관계복원이다.

金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5월 중국을 방문한데 이어 7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초청, 냉각상태였던 북.중, 북.러관계를 복원하면서 정치.경제적 상호지원을 보장받았다.

마지막으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가입을 포함한 '다자(多者)외교무대' 의 진출과 EU 회원국을 비롯한 서방권과의 관계개선 움직임이다.

동국대 강성윤(姜聲允.북한학과)교수는 "북한의 전방위 외교는 체제유지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라면서 "남한.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 및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복원은 북한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이끌어 내려는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아세안 국가와 EU 회원국과의 관계개선은 경제적 지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고 설명했다.

姜교수는 이어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북한도 국제사회 진출을 노렸으나 미국의 외교적 봉쇄와 남한의 견제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면서 "핵 카드를 통한 북한의 '벼랑끝 외교' 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 , 클린턴 정부의 '개입정책' 이 맞아 떨어져 올들어서야 그 결실을 보게됐다" 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새로운 외교노선은 한반도 평화정착 및 통일에 도움을 주는 방향" 이라면서 "북한이 이제는 과거의 외교정책으로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 이라고 전망했다.

이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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