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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메세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메세나는 로마제국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측근이자 시인이었던 마이케나스의 프랑스식 발음이다.

메세나는 시인 호러스와 버질 등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사귀면서 그들의 창작활동을 적극 후원했다.

그리고 사후에는 남은 재산 모두를 문화.예술 진작을 위해 내놓았다. 이런 문화후원에 힘입어 로마는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과시하며 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후원자.후견인을 뜻하는 패트런이나 스폰서라는 표현보다 서구에서는 이 '메세나' 란 말이 후원의 보상이라는 불순한 동기 없이 문화예술 애호 및 진작 정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군주나 유력인사에게 도움을 받은 예술가들은 그들의 '주인' 패트런을 위해 자신의 예술을 '헌정' 하곤 했었다. 지원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주고 마음대로 활동하라는 것이 메세나 정신이다.

1976년 프랑스 10대 은행이 모여 프랑스상공업메세나추진협의회를 만들면서부터 영국.독일 등 유럽과 일본 등지에선 기업들이 메세나를 결성해 문화활동 지원에 나서고 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순수 문화예술은 살아남기 힘들다. 지난 9월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상업논리가 문화예술의 생산과 유통의 전 과정에 관여, 예술의 자율성이 흔들리고 있다" 고 경고했다.

또 알바니아 출신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는 "예술의 자율성이 흔들려 시장경제에서 많이 팔린 작품들이 좋은 문화예술 행세를 하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이 뒤집어질 수 있다" 고 후원없이 시장경제 체제에 맡겨진 문화예술의 폐해를 지적했다.

93년 말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기업인.문화예술인들을 불러 청와대에서 칼국수를 대접하며 "앞으로는 정치자금에 신경쓰지 말고 문화예술에 투자하는 게 좋겠다" 고 밝혔다. 그후 94년 기업의 문화예술지원 방안을 협의하는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가 탄생했다.

그러나 제대로 꽃피우기도 전에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맞아 기업의 지원은 대폭 줄어들어 문화예술계를 더욱 추위에 떨게 하고 있다.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이 지난 18일 한국문학번역금고에 후원금을 기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한국문학을 해외에 널리 알려 노벨문학상이 한국에 돌아오기를 바란다며. 金장관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경제위기만 아니었다면 '문화 대통령' 으로 불렸을 만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다" 고 밝혔다.

어려운 때일수록 정신이 피폐해져 막가지 않도록 순수 문화예술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지원이 더 절실하다.

이경철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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