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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바람따라] 남한강변의 국보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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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남한강이 달천을 만나는 충주 탄금대 앞에서 원주 섬강이 흘러드는 합수머리까지 1백리 강변 길을 가다 보면 길에도 흥망성쇠가 있음을 절감한다.

이 유역은 삼국시대 이래 계립재와 새재.죽령 등 영남과 중원땅을 이어 주던 영남대로의 관문으로 교통의 요지이자 군사 요충이며 내륙 수운(水運)의 대동맥이었다.

***1000년 교통요지가 교통오지로

그러나 1900년대 신작로와 철길이 뚫리자 수운은 빠르게 쇠퇴했다.추풍령이 열리면서 영남대로의 위력도 빛을 잃었다.오늘날에는 2천년 교통 요지가 1백년 만에 교통 오지가 되고 말았다.

그 사이 남한강 물길의 성쇠(盛衰)도 잊혀지고 강 언덕.산기슭에 폐사된 절터와 석물(石物)들만 남아 옛 영화를 증언한다.국보도 네 점, 숨은 듯 감춘 듯 번잡을 피해 길손을 반긴다.

이 나들이에 유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추수가 반쯤 끝난 논둑길이나 구절초.억새.칡넝쿨이 길섶을 다투고 있는 산마을 길을 오가며 길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거기 빗대어 사람의 일생에 대해 반추해 보는 덤도 있다.

탄금대에서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면 강변 넓은 들(탑들) 높다란 흙단 위에 우뚝한 탑이 눈에 띈다.중앙탑으로 더 잘 알려진 중원 탑평리 7층 석탑(국보 6호)이다.현존하는 유일한 통일신라시대 7층 탑으로 높이가 14.5m다.

***남한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

중앙탑에서 서북 10리쯤 용전리 입석마을 삼거리 비각 안에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가 있다.

5세기 후반 장수왕 때 세운 것으로 보이는 이 비석은 1천5백여년 잊혀졌다가 1979년에야 남한에서 유일한 고구려 비석으로 확인됐다.자연석에 비문을 새겨 세운 수법이나 생김새가 광개토대왕비를 빼닮았다.

강변을 조금 벗어난 소태면 오량골 청계산 남쪽 기슭에 청룡사터가 있다.절은 1백여년 전 명당을 차지하려던 세도가의 사주로 승려가 방화해 불타고 보각국사 부도인 정혜원융탑(국보 197호)과 탑비(보물 658호).사자석등(보물 656호)만 쓸쓸히 남아 있다.

유교국가 건설에 골몰하던 태조의 특명으로 1394년 세워졌다.

왕명으로 세웠으니 당대 제일의 솜씨가 분명하지만 '조선시대에도 돌 다루는 솜씨가 저 정도는 되었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는 수작이다.

팔각원당형의 부도는 중대석과 몸돌이 북통처럼 배흘림을 해 새로운 양식을 보여 준다.여덟 모서리 배흘림 두리기둥을 감고 오르는 용의 두툼한 돋을새김이 화려하며, 지붕 합각마루 끝마다 새긴 봉황을 물고 있는 용 머리 조각도 독특하다.

부도 앞의 석등과 함께 전체적인 이미지는 잘 부풀어오른 빵을 연상케 한다.조선시대 부도로는 유일한 국보다.

길을 재촉해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으로 가면 대규모 폐사지 두곳이 있다.

정산리 거돈사터에는 원공국사 부도비(보물 78호)와 3층 석탑(보물 750호), 법당 기단 및 불대좌만 남아 있을 뿐 절의 역사를 밝혀 줄 어떤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원공국사 부도는 일제시대 때 일본인이 서울로 헐어 간 것을 해방 후 찾아내 현재는 중앙박물관 뜰에 세워 놓았다.

*** 거돈사·법천사 터만 휑뎅그렁

법천리 서원마을에는 법천사터가 있다.신라 성덕왕 때 창건(725년)돼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법천사는 서원마을 전체를 차지한 넓은 절이었다.

지금은 부도전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부도전에는 짝을 잃은 화려한 석물들이 흩어져 있고 그 옆으로 지광국사 부도비(국보 59호)가 서 있다.

지광국사(984~1067)는 고려 초 다섯 왕에 걸쳐 왕사, 국사를 거듭하며 당대를 풍미한 고승이었다.

지광국사 열반후 18년만인 1085년에 세워진 부도와 부도비는 그가 생전에 드리운 도력의 그늘 만큼 온 나라의 공력을 기울여 만들어진 걸작이다.

부도비는 크기도 하거니와 귀부나 비신 양 측면에 새긴 용무늬 등이 웅장.정교.화려함을 겸해 11세기 대표적인 조각품으로, 국내 부도비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곳 부도(지광국사 현묘탑.국보 101호) 역시 일본인이 오사카까지 몰래 가져갔던 것을 되찾아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중앙박물관 뜰에 서 있다.

8각이 아닌 4각의 양식도 특이하지만 규모도 가장 크며 화려함이 극치를 이뤄 우리나라 부도 중 으뜸 걸작으로 꼽힌다.절터의 허허로움을 넉넉히 채워주는 눈맛이 여기 있다.

나들이를 마무리하며 흥망이 너무도 분명하게 남아 있는 이 강가에서 다시 길을 생각한다.길에는 시작과 끝,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그런 이치가 어디 걸어 다니는 길에만 있겠는가.삶과 죽음의 길 또한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이 가을에 생각해 본다.

이택희 기자

◇ 대중교통〓중앙탑.고구려비는 충주 터미널 옆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탄금대 방면 버스가 자주 운행된다. 청룡사터는 충주 구시청 후문에서 세포.주치리행 버스가 하루 5회 운행된다. 법천사터.거돈사터행 버스는 원주.문막에서 있다.

거돈사행은 하루 3회. 앙성(충주시 앙성면)에서는 법천리행 버스가 하루 8회 있다.

문의 충주버스터미날(043-845-0550), 원주버스안내(033-761-3781).

◇ 먹을 거리〓충주방향으로 목계교를 건너 오른쪽에 있는 강변회집(043-852-0799)은 참메자조림과 올뱅이국이 별미다.

참메자(표준어는 참마자)는 살이 하얗고 단단해 조림감으로 좋은 민물고기. 두툼한 감자를 냄비 바닥에 깔고 매운 양념을 해 감자가 눋도록 졸이면 뼈까지 먹을 수 있다.

찬바람이 돌아야 살이 야물어져 제 맛을 내니 지금이 제철이다.

강원도와 충북의 경계 마을인 덕은리 식육점식당(043-855-2356)은 시골 푸줏간으로 식당을 겸하고 있다. 남한강에 수석 찾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해 알려졌다. 생돼지고기 구이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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