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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로 재해석한 바흐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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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음악에서 기존의 작품을 다시 편곡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작곡자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수도, 기타.비올라를 위한 편곡처럼 레퍼토리의 확대일 수도 있다.

이탈리아 태생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페루치오 부조니(1866~1924)가 남긴 바흐 편곡은 오르간.클라비코드를 위해 작곡된 음악을 스타인웨이 피아노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54)가 바흐 서거 2백50주기를 맞아 흔히 '바흐-부조니' 로 불리는 부조니의 바흐 편곡만으로 새 앨범을 꾸며 데카 레이블로 냈다.

또 오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ASEM페스티벌에서 김홍재 지휘의 KBS교향악단과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 을 국내 초연한다.

음반 수록곡은 '토카타 C장조 BWV 564' 와 9곡의 코랄 프렐류드 등 오르간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코랄 프렐류드 중에는 바흐의 칸타타 제140번 BWV 140에 나오는 코랄(독일 루터교의 찬송가)을 주제로 한 '잠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 BWV 645' 가 눈에 띈다.

특히 관심을 모으는 것은 '샤콘' 이라는 제목으로 더 유명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2번 d단조' 를 피아노로 편곡한 것. 부조니가 1892년 보스턴에서 완성.초연했다.

원래 바흐가 바이올린의 다성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작곡한 이 곡은 바흐 자신이 류트를 위해 편곡했고 멘델스존은 여기에 피아노 반주를 첨가했다.

또 리스트.슈만.브람스가 피아노 독주용으로, 존 윌리엄스가 기타 독주용으로 편곡했다.하지만 모든 '샤콘' 편곡 중에서 부조니의 작품이 단연 압권이다.

원곡 악보의 행간에 숨어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발전시키면서 오르간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음향을 피아노에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그래서 그의 편곡은 단순한 번역에 머물지 않고 '제2의 창작' 을 지향한다.

부조니에게 있어 리스트는 건반음악의 메시아였으며, 바흐는 그 출발점이었다.그의 바흐 편곡은 원곡의 구조와 프레이징에 변화를 가했다는 점에서 '원곡에 대한 신성모독' 이라는 논란도 일고 있지만 전세계 피아니스트들에게 확고부동한 스탠더드 레퍼토리임에는 틀림없다.

양손뿐 아니라 페달까지 사용하면서 다양한 음색을 내는 오르간 작품을 피아노로 옮기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부조니의 바흐 편곡은 여러 개의 음이 동시에 울릴 때 내는 다양한 음색의 스펙트럼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거의 스타카토 주법으로 일관하는 이 연주에서 귀기울여야 하는 것은 여러 개를 겹쳐놓은 선율뿐 아니라 바로 이 '울림' 이다.

백씨가 국내 초연할 부조니의 협주곡(1904년)은 5악장 구성으로 70여분 걸리는 방대한 작품.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테크닉과 엄청난 파워를 요해 자주 연주되지 않는 편이다.

1~4악장에 등장했던 주제들이 다시 반복되는 5악장에서는 덴마크 시인 아담 고틀로프 욀렌슐라거(1779~1850)가 쓴 시를 이탈리아어 가사로 부르는 남성합창이 함께 등장한다.

백건우와 부조니의 인연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줄리아드 음대 졸업 후 이탈리아에서 부조니의 제자인 귀도 아고스티를 사사했기 때문이다.1969년에는 볼자노에서 열린 부조니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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