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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칼럼] 접대하다 날 샐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국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임원이 거래처 담당자와 저녁 식사를 갔다. 이 외국인이 한국에 부임한 지 6개월이 채 안됐을 때의 일이다. 저녁 식사는 갈비가 나오는 한식집에서 소주와 함께 했다.

여기까지는 외국인 임원도 별로 특별한 것을 느끼지 못했고 그는 저녁 식사가 그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것은 긴 밤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잠시 후 깨달았다.

소주로 얼큰해진 일행은 세컨드 라운드(2차)로 소위 단란주점이라는 곳을 가게 됐다. 이곳에서 그는 가수 못지 않은 실력으로 셀 수도 없는 곡을 불러대는 한국인들의 노래실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한국인들은 미국인인 이 임원보다 더 유창하게 영어노래까지 잘 부르는 것이 아닌가.

또한 아가씨들도 함께 자리했는데 느린 곡이 나오면 서슴지 않고 남녀가 슬로 댄스를 추는 것이었다.

그 때의 시간은 이미 11시가 넘었다. 이 외국인은 저녁 술값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미 술값이 그의 회사 지급 범위 규정을 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그날 밤 유흥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위 3차로 일행이 몰려갔기 때문이었다. 간 곳이 강남의 룸 살롱. 얘기만 들었던 곳. 그 곳에서 진짜 저녁이 시작된 것을 깨달았다.

우선 술을 먹는 방식도 상당히 화끈(?)했다. 맥주와 위스키를 함께 섞어 마시는 등 다양한 방법도 보여줘가면서 술이 그다지 세지 못한 외국인에게 거의 압력(?)을 행사해 가면서 밤의 우정을 나눴다.

술을 못한다고 하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는 우정 어린 충고를 하면서…. 아마 접대를 받은 측은 상대방이 세계적인 기업체의 한국을 대표하는 임원이니까 당연히 지불능력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 밤에 나온 술값은 이 외국인 임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천문학적인' 숫자란다.

결국 그 외국인은 자기의 한 달 생활비를 고스란히 전날 술값으로 채워야 했다.

하룻밤에 몇천달러의 술값을 회사가 내줄 리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그로서는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사회에 있어 접대가 없을 수는 없다. 아무리 윤리강령이 철저한 기업도 접대를 전혀 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협력업체 사이에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접대가, 접대를 해야만 하는 자와 접대를 받는 자 사이에 흔히 이뤄질 수 있는 접대가, 그 것도 하룻밤의 접대가 앞에 언급한 것 같은 경우라면 생각해 볼 문제다.

이러한 접대비를 감당할 기업이 있을까. 도대체 기업들은 어떻게 이러한 비싼 접대비를 장부처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접대를 해야만 비즈니스가 성사된다면 접대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다 같이 경쟁력이 없는 건 아닐까. 이렇게 해서 낭비되는 돈의 액수는 얼마인가.

밤새 술을 마시고 어떻게 그 다음날 최선을 다해 일할 수 있을까. 이 돈과 시간이 접대비 대신 연구.개발(R&D)비로 할애돼야 하지 않을까.

자동차 하나를 생산하는 데는 수만가지의 부품이 들어가고 자동차 회사들은 이들 대부분을 협력업체로부터 공급받는다.

만일 누군가가 비싼 접대 때문에 덜 좋은 부품을 썼다면 지구상에 굴러다니고 있는 수많은 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은 어떻게 되겠는가.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는 전 세계적으로 몇십만의 거래처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약 2년 전 월마트 한국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방문자가 대기하는 곳에 걸려 있던 문구가 생각난다.

'협력업체로부터 더 이상 쓰지 않는 제품의 샘플도 받아서는 안된다' 는 회사 규정…. 이렇게 철저한 윤리강령이 오늘날 월마트를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제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유통회사로 키웠을 것이다.

한국은 국민총생산(GNP)이 세계 13위에 이르는 경제 대국일 뿐 아니라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에 있다.

진정으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단지 겉으로 드러난 기술뿐 아니라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도 투명해져야 하는 건 아닐까….

웨인 첨리(다임러 크라이슬러 한국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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