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왜 많이 죽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40에 불혹(不惑) 50에 지천명(知天命)' 이라는 말은 20대, 30대 젊은이들도 더러 듣는 말이고, 40대, 50대의 중년을 넘어선 사람들에겐 어쩌면 귀가 따갑도록 들은 말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인생을 반나마 살았으니 이제 "정신차릴 때도 됐다" 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 40, 50대 男사망률 女 3배

이 말은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유명한 말로, 나이 40쯤 되면 누구나 자기 신념이 확고해져 미혹(迷惑)되지 않고, 50줄에 들어서면 하늘이 자기에게 내린 사명을 알아차려서 분수에 넘치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40을 넘긴 나이에도 아직 정신이 헷갈려 무엇에 홀린 듯 갈팡질팡 헤매는 사람을 '불혹' 이라 할 수 없고, 50을 넘어 반백(斑白)이 되고서도 아직 자기 능력의 한계점을 터득하지 못해 젊은 사람마냥 기를 쓰고 뭘 더 잡아보려는 사람을 '지천명' 이라 할 수는 없다.

지난주(9월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1999년 인구동태 통계' 결과를 보면 도대체 이런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한편으론 두렵고 한편으론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경악' 이란 표현도 이 경우 과장이라 하기는 어렵다. 바로 40대, 50대의 사망률 성비(性比)다.

출산율이 해가 다르게 떨어져 여성 가임기간 중 평균 출산아 수가 선진국 평균(1.56)보다 낮아지고 있다(1.42)든지, 이혼율이 해마다 증가해 이젠 그해 결혼 건수(약 36만)의 3분의1(약12만)에 이르고 있다는 것 등은 그렇게 놀랄 일은 못된다.

산업화의 진행에 따라 이런 일들은 항다반사로 으레 일어나는 일들이고, 가임여성의 출산아 수도 그때 그때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것이 앞서 산업화한 나라들의 일반적 예다.

하지만 어느 나라고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예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40~50대의 여성 대비 남성 사망률이다.

여자 100에 대한 남자 사망률은 40대 전반에선 305가 넘고, 후반에서는 302에 이르러 여자사망률의 세배가 넘는다.

이는 50대도 계속돼 남자 사망률은 거의 300선까지 이르다가 60대 전반에 가서야 겨우 266으로 떨어진다.

이러한 우리의 사망률 성비는 미국이나 유럽의 예에서 보는 일반적인 사망률 성비 150(많으면 108)의 두배'가 넘고, 심지어 60대 후반에 가서도 우리의 남성사망률 성비는 유럽의 그것보다 무려 75나 많은 225가'나 된다.

어째서 우리 40대와 50대는 역사에 유례없이 그렇게도 많이 쓰러질까. 이유는 간단하다 불혹의 나이에도 갈팡질팡 '많이 뛰니' 쓰러지고, 지천명의 나이에도 분수를 잊고 많이 뛰니 쓰러진다. 옛말에 '동자요(動者夭)' 라 해서 기를 쓰고 많이 뛰면 으레 쓰러지게 돼 있다.

쓰러지는 40~50대는 그것이 어디 나만의 탓이냐고 얼마든지 항변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그렇게 몰아가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주장도 얼마든지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 사회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우리 사회처럼 성쇠가 자주 뒤바뀌고, 우리 사회처럼 일관성이 유지되지 않는 사회도 찾아보기 어렵다.

흥망이 뒤집히는 속도가 우리 사회처럼 빠른 사회는 역사상 그 어디에도 없다. 그 치열, 그 뒤바뀜, 그 뒤집히는 속도만큼 스트레스도 증가하고 간장을 저미는 아픔도 크다. 그 스트레스, 그 아픔만큼 사망률도 높다.

*** 기를 쓰고 많이 뛰다보니

내 아무리 '불혹' 하고 내 아무리 '지천명' 에 산다 해도 당장 사업이 무너지고 당장 실업자가 되는 데는 내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고, 내 수양으로도 도저히 감내해 낼 수 없다.

한계점이니, 분수니 하는 것도 누가 눈에 보이게 선명히 선을 그어놓은 것도 아닌 이상 결국 쓰러지도록까지 뛰어갈 수밖에 없다면, 그 유죄는 가파른 속도의 산업화에 있는가, 불혹도 지천명도 모르고 뛰기만 한 내 개인에 있는가.

거기에 한국 여성들은 한국의 남성에 비해 훨씬 유능하고 똑똑하다. 욕심도 많고 성격도 드세다.

그만큼 남편들을 족치고, 족쇄를 채우고, 채근하고, 채찍질한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20년에서 30년을 지겹도록 혼자 살아야 하는 기혼여성의 비율도 다른 선진국의 두배가 넘게 됐다.

그러나 어떻든 이 모든 '경악의 통계숫자' 를 줄이는 길은 40~50대 남자들에겐 오직 불혹과 지천명의 수기(修己)밖에 없을 것 같다. 다른 길을 찾으려 하는 것만큼 성비는 더 불균형으로 치다를지 모른다.

송복 <연세대교수, 정치.사회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