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유로화 가입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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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덴마크의 유로화 가입이 무산됐다. 덴마크는 27일 유로화 가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반대 53.1%, 찬성 46.9%로 부결됐다고 발표했다.이로써 유럽연합(EU) 15개 회원국 중 유로에 가입하지 않은 영국.덴마크.스웨덴을 유로화 체제에 편입시킨 후 정치통합을 향해 나아가려던 EU의 구상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지게 됐다.

◇ 부결 원인〓자국 화폐인 크로네(krone)를 지켜 경제주권을 확보하겠다는 이유 외에도 역사.정치.사회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덴마크 국민들은 그동안 유로화에 가입하고 유럽통합에 참여할 경우 자신들이 내는 막대한 세금을 기초로 한 자국 사회복지제도의 과실을 유럽내 다른 가난한 국가들에 빼앗기고 더 많은 세금을 추가로 부담하는 게 아닌가 우려해 왔다.이같은 불안감이 유로 가입의 덜미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덴마크의 복지 수준은 유럽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다.

과거 바다를 주름잡던 시절부터 이어져 온 덴마크 국민 특유의 반골의식이 투표결과에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덴마크는 1992년 유럽통화동맹의 기반이 된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도 부결시킨 바 있다.게다가 정치권이 유로 가입의 필요성을 적절히 홍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유로화 가치가 지난해 1월 출범 이후 25% 가량 크게 떨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 예상 파급효과〓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 로마노 프로디 EU집행위원장 등 EU 지도자들은 유감을 표하면서도 그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있다.덴마크는 인구가 5백30만명에 불과하고 국내총생산(GDP)규모도 유럽 전체의 2.6%에 불과해 대세에 큰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결과는 유로의 미래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 확실시된다.유로 가입 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영국과 스웨덴의 여론이 반대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투표결과가 영국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이라는 토니 블레어 총리의 공식반응과는 달리 BBC방송 등 언론들은 "영국.스웨덴의 유로 가입이 더욱 어려워졌다" 고 보도했다.

현재 중.동부유럽 12개국을 새로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EU가 유럽통합을 원하는 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들로 나뉘어 이중적으로 운영될 가능성도 커졌다.

◇ 유로화 동향〓유로화 가치는 투표 결과가 발표된 이후 유로당 0.8794달러로 전날보다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부결될 것에 대한 불안감이 이미 시장에 반영된데다 유로화 급락을 막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 및 서방 선진국이 공조개입할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유로화 하락이 당분간 이어질 것" 이라고 전망했다.

김현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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